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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저를 등에 업은 일본 업체들이 해외시장에 이어 내수시장에서도 우리 기업의 영역을 빠르게 잠식하고 있다.
특히 자동차의 경우 엔저를 기반으로 한 가격경쟁력에다 대대적인 마케팅에 힘입어 이달 판매량이 무려 3배나 늘어난 일본 메이커까지 등장했다.
21일 수입차업계에 따르면 이달 들어 19일 현재까지 한국토요타의 자동차 판매대수는 460여대로 지난달 같은 기간에 비해 3배가량 늘었다. 한국토요타가 엔저를 기반으로 5월 한달간 캠리와 프리우스의 가격을 300만원 할인해주는 프로모션을 실시한 직후의 일이다. 올 들어 4월까지 도요타 제품의 월별 국내 판매량이 전년 동기 실적에 미치지 못했던 점을 감안할 때 '깜짝 실적'인 셈이다.
한국토요타의 한 관계자는 "이달 들어 차량 계약건수가 3배 정도 증가했고 도요타 대리점을 방문하는 고객의 수도 3~4배 증가했다"며 "지금 이 시점에서 이미 지난달 전체 판매량의 80%를 달성했고 아직 2주간의 영업일이 남아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5월은 전월 실적을 훨씬 초과하는 실적을 거두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도요타의 이처럼 매서운 상승세는 근본적으로는 엔저에 기인한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캠리 등 도요타의 주력 차종들이 미국에서 생산되고 있기 때문에 엔저가 이번 가격인하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는 없다"면서도 "하지만 엔저로 매출과 영업이익이 크게 증가하면서 그만큼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칠 수 있는 여력이 생겼기 때문에 파격적인 가격인하 프로모션을 실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도요타의 지난해 4월부터 올 3월까지 2012 회계연도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248조원, 14조원으로 전년 대비 매출은 18.7%, 영업이익은 무려 271.4% 늘어났다.
한국토요타의 공격적인 프로모션으로 인해 내수시장에서 경쟁관계에 놓여 있던 국산차보다 도요타 차량의 가격이 더 저렴해지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실제 2,400㏄ 그랜저의 경우 최저가형 가격이 3,012만원으로 가격이 인하된 캠리(3,070만원)보다 저렴한 듯 보이지만 캠리에는 기본으로 탑재된 내비게이션을 추가할 경우 가격은 3,117만원으로 뛰어올라 캠리보다 47만원 비싼 격이 된다.
반면 일본 중형차와 비슷한 가격대의 경쟁모델인 그랜저와 제네시스(쿠페 포함) 등의 판매는 올 들어 줄고 있다. 현대차 제네시스는 지난해 4월까지 6,670대가 팔렸으나 올해는 같은 기간 4,604대 팔리는 데 그쳤다. 45%가량 줄어든 것이다. 그랜저도 판매량이 3.6% 감소하며 일본차와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한국토요타뿐만 아니라 혼다ㆍ닛산 등 다른 일본 메이커들도 주력 모델의 가격을 할인해주는 판촉행사를 진행하며 내수시장 공략을 강화하고 있다. 혼다코리아는 이달 어코드 2.4 구매자에게 100만원, 3.5의 경우 150만원 상당의 주유상품권을 제공한다. 또 시빅 유로와 CR-Z를 현금으로 살 경우 각각 300만원, 500만원을 깎아준다. 특히 출시된 지 6개월도 채 안 된 어코드를 대상으로 프로모션을 실시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닛산코리아도 현금구매시 뉴알티마 100만원, 큐브 50만원 등을 할인해준다.
일본 메이커들은 기본형 모델에 옵션을 추가 탑재하고 가격은 그대로 유지하는 등의 방법으로도 사실상의 가격인하를 단행하고 있다. 한국토요타가 6월1일부터 출고를 시작하는 RAV4는 기존 모델 대비 400만~500만원 상당의 옵션이 추가됐지만 가격은 이전 제품과 비슷한 수준으로 책정됐다. 실제 RAV4는 경쟁모델로 삼고 있는 현대차 싼타페, 폭스바겐 티구안 등이 기본형 모델에서 채택하지 않고 있는 시트 메모리 기능, 블라인스 스팟 모니터 등을 기본으로 탑재하고 있다. 독일 브랜드들이 대체로 옵션을 빼고 있는 추세와는 사뭇 대조적이다.
엔저에 힘입은 일본 기업들의 공격적인 마케팅은 앞으로도 한동안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나카바야시 히사오 한국토요타 사장은 최근 RAV4 출시 행사장에서 "올해는 RAV4가 도입되는 5~6월부터 더욱 열심히 하려는 계획을 갖고 있다"며 "판매량 증가에 큰 기대를 하고 있다"고 말해 향후 내수시장 공략을 강화할 방침임을 시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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