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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반덤핑법 ‘종이호랑이’ 전락
입력2004-02-25 00:00:00
수정
2004.02.25 00:00:00
최원정 기자
미국이 일방주의적 통상정책을 펴며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처럼 휘둘렀던 반덤핑법이 세계무역기구(WTO)의 철퇴를 맞았다. 이에 따라 미국으로부터 무역규제를 당한 교역국들의 대미 공세가 더욱 강력해질 것으로 보인다.
24일 WTO는 미국이 지난 2000년 불법으로 판정받은 반덤핑법을 폐기하지 않자 유럽연합(EU)이 미국에 대해 상응하는 보복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허용하기로 결정했다. 지난해 말 경쟁국들의 보복압력으로 철강관세 부과를 철회했던 미국이 또다시 반덤핑법을 폐기해야 할 입장에 놓이면서 미국의 일방주의적 통상법은 어떤 형태로든 타격을 받을 전망이다.
◇무역분쟁에서 연속으로 패배하고 있는 미국=미국의 반덤핑법은 지난 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1916년 제정, 외국 수출업자의 덤핑으로 피해를 입었다고 간주되는 미국 업체들이 외국업체를 제소해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허용해왔다. 미국 법원의 결정으로 외국업체에 민ㆍ형사상 처벌까지 내릴 수 있는 것. 이 법안은 덤핑행위에 대한 시정조치로 수입관세부과만을 허용하고 있는 WTO 규정에 어긋나는 것으로, WTO는 지난 2000년 3월 이 법안의 위법성을 판정했지만 미 의회는 법안을 폐기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WTO는 EU가 미국에 대해 똑같이 보복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결정한 것이다.
이에 앞서 지난해 말 미국이 철강관세 부과를 철회한 것도 결국 미국이 교역 상대국들의 보복압력에 굴복한 대표적인 사례다. WTO가 미국의 철강 긴급수입제한조치(세이프가드)를 협정위반으로 판정하자 미국은 EU와 아시아, 남미 등 철강 수출국들의 보복관세를 피하기 위해 관세 철회를 결정했다. 정해진 교섭기한 내에 무역장벽을 폐지하지 않을 경우 무차별적인 보복을 단행하는 `슈퍼 301조`와 외국기업에 물린 반덤핑 관세 수입을 자국 기업에 지원토록 한 `버드법안` 등 미국이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해 취해왔던 조치 역시 WTO로부터 위법 판정을 받으며 국제 사회에서 유명무실해지고 있다.
◇미국 통상법, 종이호랑이 되나=미국의 무역조치들이 연달아 된서리를 맞으며 미국이 예전처럼 무역마찰이 발생할 때마다 상대국에 자국의 통상법을 무기삼아 위력을 과시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 95년 WTO체제 출범 이후 미국의 독단적인 무역관련 법규에 잇따라 제동이 걸렸고 이번 조치로 그동안 말썽많던 반덤핑법까지 존폐의 기로에 놓이게 된 것이다. 미 무역대표부의 리처드 밀스 대변인은 WTO가 반덤핑법에 대해 EU의 손을 들어준 것으로 전해진 뒤 “미 의회가 의견에 진전을 이뤄 반덤핑법을 폐기한다면 문제가 해결 될 것”이라고 말해 결국 반덤핑법이 폐기될 수 있음을 내비쳤다. 파스칼 라미 EU무역담당 집행위원은 “이번 조치는 WTO 회원국들이 의무를 지키지 않으면 제재를 받을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보여줬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WTO의 잇단 시정조치에도 불구하고 대선을 앞둔 미국이 보호무역주의 정책을 끌고 갈 수 밖에 없어 시장 방어를 위해 보복조치를 남발하는 미국과 이에 대항한 공세를 강화할 교역국들간의 무역 마찰이 더욱 빈번해 질 것으로 내다봤다.
<최원정기자 abc@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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