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 조작 파문이 확산되면서 폐쇄적인 채권 거래 관행의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채권시장 정보의 비대칭성을 해소하고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실시간으로 관련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전자거래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23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올 들어 채권시장의 장외거래 비중(거래대금 기준)은 82.7%에 달한다. 대부분의 채권 거래 호가 정보가 매수자와 매도자 간 메신저나 전화 등 개별적인 통신수단을 통해 공유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지난해 공정위가 증권사의 국민주택채권 매매 방식에 제동을 건 데 이어 최근에는 CD 금리 보고 업무를 맡고 있는 증권사에 대해 담합 의혹을 제기하면서 채권시장의 거래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채권 거래를 할 때 개인적인 루트를 통해 거래 정보를 공유하는 과정에서 정보 왜곡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만큼 채권 거래를 보다 투명하게 할 수 있도록 대체거래시스템(ATS) 등 대안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ATS를 도입할 경우 모든 시장 참여자가 매수ㆍ매도 호가와 체결 수익률 등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정보의 비대칭성에 따른 시장 왜곡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이한구 금융투자협회 채권시장지원팀장은 "미국이나 유럽 역시 메신저ㆍ전화 등을 통해 채권 거래 정보를 공유하지만 채권 ATS를 통해 시장 투명성을 높이고 있다"며 "최근에는 채권 거래가 많은 자산운용사가 자체 거래 시스템을 개발해 거래 투명성을 높이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글로벌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이 이달 초 자체 채권 거래 플랫폼 개발을 마치고 주요 고객사와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의 경우 ATS 허가제를 규정하고 있는 자본시장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가 지연되면서 채권 ATS 설립이 법적으로 불가능하다. 금융위원회는 지난해 자본시장법 개정을 추진하면서 주식 ATS를 우선 도입한 후 채권ㆍ파생상품 등으로 대상을 확대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일부에서는 거래정보 노출을 꺼려하는 채권시장의 특성상 ATS 도입은 시기상조라는 주장도 제기한다. 한 자산운용사 채권 매니저는 "금융투자협회에서 제공하는 프리본드의 사례를 보더라도 감독 당국에 거래 정보가 노출될 수 있어 활용도가 높지 않다"며 "ATS가 도입되도 정보 보안에 대한 확신이 없는 한 시장 안착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ATS 도입 이전에 금융감독 당국이 명확한 채권시장 운영 지침을 마련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한 대형 증권사 채권영업팀장은 "채권시장에서 관행으로 여겨져왔던 것이 담합의혹을 받는 상황에서 지금이라도 금융 당국 주도로 세부적인 지침을 마련해 업계를 보호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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