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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도 많이 알려진 말레이시아의 대표적인 이미지는 쌍둥이 빌딩과 이슬람 금융이다. 페트로나스 트윈타워와 이슬람금융은 실제로 말레이시아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보여주는 얼굴이다. 말레이시아는 동남아시아적 하드웨어에 이슬람문화와 서구문화의 소프트웨어를 탑재해 안정적인 성장을 지속하고 있다.
지난해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말레이시아는 존재감을 과시했다. 70억 달러를 조달해 세계 5위를 기록한 기업공개(IPO) 시장을 비롯 부동의 1위로 세계시장의 70%를 차지하는 이슬람채권(수쿡)을 앞세워 이슬람금융을 선도하고 있다. 자본시장은 채권, 주식 및 자산운용 등 각 부문에서 높은 두 자리 수 성장을 보이며 최근 10년간 평균 10%의 성장을 이루어 동남아시아의 금융 리더쉽을 공고히 다져나가고 있다. 올해 초까지 주식시장도 사상 최고치를 연신 경신했다.
지난해 1인당 국내총생산(GDP) 1만달러를 달성한 말레이시아는 국민소득 2만달러의 고소득사회 구현을 당초 목표한 2020년보다 앞당겨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고조되고 있다. 세계적인 유행을 추종하지 않고 구체적이고 실행 가능한 12가지 국가경제목표에 집중하는 경제변혁계획은 2012년 민간투자 목표를 9%이상 초과하는 성과를 달성(450억달러)해 5.6% GDP성장의 견인차가 됐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올해 5% 이상의 성장목표를 추진하고 있으며 국제신용평가사와 투자은행들도 한결같이 5% 이상의 성장 전망치를 내고 있다.
90년대 말 아시아 외환위기를 국제통화기금의 도움을 받지 않고 극복했고, 2008년 글로벌금융위기 이후 빠른 회복 및 견고한 성장을 하고 있는 말레이시아의 저력의 바탕은 무엇일까. 그것은 말레이시아의 소프트파워에 주목해야 한다.
한때 말레이시아는 자원부국으로 알려져 있으나 이는 실제와 조금 다르다. 연 20조원 이상의 이익을 내는 국영석유회사 페트로나스의 수입 절반 이상은 해외자원개발에서 나온다. 석유와 가스를 보유한 자국의 하드웨어를 통해 해외유전개발의 소프트파워를 키워 중동과 아프리카에서 석유와 가스를 개발하고 있다. 석유와 가스 외의 천연자원은 별로 없는 편이다.
말레이시아 수출의 가장 큰 부분은 전자제품이다. 이는 저임금을 통한 해외산업유치가 아니라 친기업적인 정책과 우호적인 투자환경 제공을 통한 해외산업 유치 덕분이다.
세계은행 등의 사업환경 평가에 따르면 2011년 투자자보호지수 세계 4위, 자금조달 수월성 세계 1위, 사업수행 수월성 21위를 기록하고 있다. 우수한 인프라 구조도 해외산업유치에 한몫 했겠지만 우호적인 정책 등 사업환경은 정부부문의 소프트 경쟁력이다.
가장 놀랍고 부러운 부분은 동남아시아에서 말레이시아의 금융 리더십이다. 말레이시아가 이슬람금융의 허브를 추진하는 배경에는 일반금융(Conventional Banking)부분에서 이미 깊숙이 진행된 글로벌화와 경험을 통한 자신감이 바탕이 되고 있다. 현지 주요 금융 그룹의 해외수익비중(Trans National Index)은 40%에 이르러 3% 남짓한 국내금융그룹과 크게 대비된다. 말레이시아의 2위 금융그룹인 CIMB는 유럽계 금융회사의 아시아태평양 부문을 인수해 한국에 진출했다. 지난해 말에 해외투자부문에 따른 부담으로 CIMB의 투자수익비율(ROE)가 크게 하락할 것으로 시장의 우려가 증폭되었는데 이는 20% 이상에서 16%대로 낮아진 데 따른 우려였다. 이러한 실적을 바탕으로 현지 금융그룹의 주식은 국내금융사의 2배 이상의 가치로 거래되고 있다.
말레이시아가 이슬람금융의 허브를 추진하고, 동남아시아 주식시장 통합 및 투자상품 시장의 통합을 주도하는 배경에는 장기간에 걸쳐 육성해온 인력과 축적된 경험을 바탕으로 한 소프트 자신감이 깔려있다. 이슬람 세계에서 말레이시아가 차지하는 인구 비중이 3%에 불과한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말레이시아의 소프트파워의 핵심은 정치적인 안정과 안정적 정책수행 능력이다. 최근 동남아시아 경제가 세계의 주목을 받는 밑바탕에는 각 국가들의 정치적 안정성이 기초가 돼 있기 때문이다. 말레이시아는 영국 식민지의 유산을 '타협과 소통'을 중요시하는 정치 시스템으로 이어 받았다. 이를 통해 수십 개의 인종그룹이 어울려 조화롭게 살아간다.
말레이시아도 다양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상품가격 하락에 따른 주력산업인 석유 및 팜 산업의 수익성 악화에 대한 우려가 고조되고 있으며 외국인직접투자(FDI) 유치에 있어서 주변을 둘러싼 인구, 자원부국과의 경쟁에서 뒤쳐지고 있다.
최근 총선을 앞두고 포퓰리즘과 정치적 불안감에 따른 주식시장의 동요도 일부 감지되고 있으나 일회성에 그칠 것으로 보고 있다.
말레이시아는 동남아시아에서 더 이상 자원, 인구 등 하드웨어적인 경쟁력을 추구하지 않는다. 금융, 관광, 서비스와 우호적인 사업환경을 통한 소프트 경쟁력을 통해 말레이시아가 2만달러의 고소득 선진국을 만들어가는 앞으로의 모습이 궁금하다. 특히 금융산업의 소프트파워를 더 키워가야 하는 우리에게 말레이시아는 숨겨진 귀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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