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금융산업에서 여성은 전통적으로 상고 출신의 창구 직원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았다. 금융산업이 서비스산업에 속하기 때문에 여성인력의 비율이 높지만 하부계층에 집중된 것도 이 때문이었다.
계급 피라미드 위로 올라갈수록 여성인력의 비율은 크게 줄어든다. 유리천장 탓이다. 이러한 현상은 여성의 발언권이 상대적으로 높은 선진국이라고 해서 별반 다르지 않다.
포춘 500대 기업 중 금융계 여성 최고경영자(CEO)는 단 1명도 없다. 특히 최근에 제조기업인 제너럴모터스(GM)가 메리 바라를 차기 CEO로 낙점하면서 월가에서조차 해묵은 유리천장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그런 면에서 우리나라는 월가를 앞서게 됐다. 차기 기업은행장에 여성이 내정됨에 따라 우리나라 금융 역사에 새로운 페이지를 쓰게 됐기 때문이다.
특히 권선주 기업은행장 내정자는 CEO로 오르기까지의 과정이 지금까지 출현했던 여성 금융인들과 질적인 차이를 보인다. 여성 금융인 시대가 활짝 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금융산업이 남성 편력이 심하다지만 외환위기 이후 외국계 은행을 중심으로 여성 고급인력들이 상층부로 속속 진출하면서 이제는 '숨은 여성 실력자'들이 제법 많다.
은행에서는 김정원·유명순·김명옥 등 '한국씨티은행 부행장 3인방'이 유명하다. 이들은 은행의 핵심 포스트를 장악하면서 미국 본사에서도 알아주는 실력자다.
신한은행에는 황영숙·신보금·신순철 등 본부장 3인방이 있으며 하나은행에도 김덕자·천경미 등 2명의 본부장이 있다.
보험에서는 우리나라 최초 여성 CEO 타이틀을 갖고 있는 손병옥 푸르덴셜생명 사장이 있으며 ING생명에는 김유미 부사장이 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증권업계에서는 이어룡 대신증권 회장, 이재경 삼성증권 상무 등의 이름이 알려져 있다.
이외에 이성남 전 민주통합당 의원(전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과 오순명 금융감독원 금융소비자보호처장은 대표적인 금융계 '맏언니'로 통하며 한국은행에는 서영경 부총재보가 여성 리더로 활동하고 있다. 그러나 이 전 의원이나 오 처장, 서 부총재보 등 일부를 제외하면 대다수 여성 임원들이 외국계 금융사 소속이라는 공통점을 지닌다.
외국계 기업은 '직급 인플레이션'이 통용되는 곳인데다 여성인력에 대한 유리천장이 상대적으로 낮은 곳이다. 이런 상황에서 보수 성향이 강한 국내 은행에 여성 행장이 탄생했다는 것은 큰 의미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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