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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지에로 총장에게/정경부·우원하(기자의 눈)
입력1997-04-17 00:00:00
수정
1997.04.17 00:00:00
우원하 기자
세계 최대의 다자간 무역기구인 세계무역기구(WTO) 루지에로 사무총장은 국제적 저명인사다. 그는 이탈리아 외교관출신으로 지난 95년 5월 초대 WTO사무총장에 선임됐다. 그는 외국 방문시 유엔사무총장에 버금가는 예우를 받으면서 세계 각국의 다양한 경제적 이해를 조율하고 무역과 투자를 증진시키는 막중한 역할을 맡고 있다. WTO사무총장은 따라서 특정국가군의 이익을 대변할 수 없으며 불편부당해야 하는 자리로 통한다.임창렬 통산부장관의 초청으로 이번에 방한한 루지에로 사무총장은 그러나 이같은 기대와 달리 다소 엉뚱한 발언으로 한국국민들을 짜증나게 하고 있다.
그는 16일 김영삼 대통령을 면담한 자리에서 『한국의 과소비 억제운동에 대해 우려하는 나라가 많다』면서 『한국은 경제에 자신감을 가지고 다자간 무역체제 안에서 경제를 운영해주기 바란다』고 훈수를 두었다.
이에대해 김대통령은 『과소비 억제 운동은 경제살리기 차원에서 자발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순수 민간운동』이라며 점잖게 타일러 보냈다.
루지에로의 이날 발언은 한국 정부가 그동안 개방적 경제운영을 위해 벌여온 모든 노력을 일거에 매도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또 우리 경제의 현실을 외면하고 선진국의 정치성 주장을 그대로 옮기는 자세와 다를 바 없이 들린다.
과소비억제 운동은 경제적 위기를 맞은 우리 국민 누구나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사안이다. 무역적자로 외채가 1천억달러를 넘어서고 성장신화가 가라앉자 경제를 다시 살려보자는 생존을 위한 국민적 자구책이다.
한국이 다자간 무역체제안에서 경제를 운영치 않는 구석이 과연 어디 있다는 말인지 이해할 수 없다. 오히려 일반 국민들과 기업들은 지나치게 빠른 개방을 용인하는 정부에 비난의 화살을 퍼붓고 있음을 루지에로 사무총장은 알아야 한다.
지난 몇년동안 거품에 휩싸여 우리 자신의 능력을 과신, 외국에 대해 실력이상의 인상을 준 정부에도 일단의 책임이 있다. 그러나 엄청난 무역적자국인 한국에 대해 미국 유럽연합(EU) 등 일부 선진국들이 벌이는 공세에 덩달아 동참하는 듯한 루지에로 사무총장의 언동은 실로 유감이다.
『한국경제의 기본 기조는 매우 좋다고 본다』고 말한 루지에로 사무총장은 한국에 온 김에 우리 경제의 밝은 면뿐 아니라 영세상인들의 어두운 표정과 부도낸 중소기업 사장의 자살소식, 재고가 쌓인 산업현장의 실상과 팽배한 위기감 등 한국경제가 당면한 경제 현실에도 눈을 돌려주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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