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이대로 가다간…" 감도는 공포
납세자 쥐어짜다가는 경기에 찬물… 적자국채 발행 앞당겨야[박근혜 시대] 재정난에 발목 잡힌 부양론하반기 침체 상황 예측 못하고 세수 규모 지나치게 늘려잡아올 경기부양 예산 확보 힘들면 내년 상반기중 추경예산 편성응급용 '재정 저수지' 만들어야
민병권기자 newsroom@sed.co.kr
"응급수술을 해야 할 판에 수혈할 피가 없어 환자 치료를 미루는 꼴이 됐다."
대통령 선거로 웃음꽃을 피우고 있어야 할 새누리당의 한 핵심 관계자는 23일 탄식을 했다.'동계 재정대란'으로 정부가 주요 공공사업 집행을 연달아 축소ㆍ중단하자 경기가 더 악화될 것을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경기는 차갑게 식어 있는데 정부가 이를 살리기는커녕 돈줄이 막혀 도리어 긴축 살림을 펴야 할 상황에 이르렀다.
지난 1980년 이후 정부의 세수결손이 빚어진 것은 올해가 네 번째다. 기존에도 1997년과 1998년, 2004년 등 각각 외환위기와 카드대란 위기 시에 결손에 빚어졌는데 당시에는 다행히 여윳돈(이월ㆍ불용액)이 남아 돌려 막을 수 있었다.
반면 올해에는 돌려 막을 돈마저 없다.
이번 재정대란의 발단이 된 것은 기획재정부의 장밋빛 경기전망이었다. 재정부가 올해 경기가 하반기부터 살아날 것으로 보고 성장률을 낙관적으로 잡았던 탓에 세금수입(세수)을 지나치게 늘려 잡았다는 것이다. 실제 경기는 하반기에 나아지기는커녕 오히려 더 불황의 골에 빠지고 있다. 이러다 보니 정부가 예상했던 세수에서 3조원에 육박하는 공백이 생기게 된 것이다.
한국은행의 가장 최근 전망을 보면 올해 경제성장률은 최악의 경우 2% 초반대로 추락할 것으로 예상된다. 당초 정부가 2012년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하면서 전제로 삼았던 전망치(4.5%)보다 반 토막이 난 셈이다. 경기가 고꾸라진 만큼 기업과 국민의 소득도 예상에 못 미치게 되고 이는 결국 나라 곳간을 채우지 못하는 상황으로 연결되고 만다.
일반적으로 우리나라에서 성장률이 0.5% 떨어질 때마다 세수는 1조원가량 줄어들게 된다고 경제전문가들은 설명한다. 따라서 2%포인트 정도 성장률이 떨어진다면 세수도 최대 4조원 정도 떨어지는 셈인데 그나마 올해는 국세청이 열심히 탈세를 막고 세원을 발굴하는 덕에 세수 결손의 폭을 약 3조원 수준으로 줄인 것으로 보인다.
세수 결손에 따른 겨울 재정대란에 기름을 부은 것은 재정당국의 '조기 재정집행' 방침이었다. 정부는 올해 예산의 60%를 상반기에 당겨 씀으로써 예산을 확대하지 않더라도 1~6월 중 경기부양 효과를 내겠다고 공언해왔다. 이에 따라 1~6월 중 정부는 올해 책정된 276조8,000억원의 예산 가운데 60.9%(168조6,000억원)를 집행하는 성과를 거뒀으며 이것이 어느 정도 상반기의 경기둔화를 막는 방파제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다.
다만 상반기에 돈을 당겨 썼으니 하반기에 그만큼 자금집행 여유가 사라질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정부는 이 같은 우려의 목소리가 나올 때마다 하반기에는 경기가 호전될 테니 걱정 없다는 식으로 일관했다. 이로 인해 정부는 추가경정예산 편성 타이밍마저 놓쳐 재정공백을 방조하고 만 것이다.
재정당국의 한 관계자는 "평상시에는 보통 1조~2조원 정도의 예산이 매년 불용되거나 이월되므로 만약 세수 결손이 생겨도 이 돈으로 돌려 막고 나중에 메우면 됐다"며 "그러나 올해에는 조기 재정집행 방침으로 이월ㆍ불용액도 거의 남지 않아 세수 결손을 메울 여력이 없다"고 밝혔다.
세수 결손을 메우는 또 다른 방법은 국회의 승인을 얻어 국채를 발행하는 식으로 시장의 돈을 정부가 꾸어오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국회는 19일의 대통령선거 여파로 민주당 지도부가 사퇴하는 등 정치적 공백에 직면한데다 내년 예산안을 처리하기에도 빠듯해 국채발행 한도 승인을 검토할 틈이 없다.
더 큰 문제는 올해와 같은 동계 재정대란이 내년에도 재연될 소지가 있다는 점이다. 재정부는 올해 세수결손을 예감했으면서도 내년 세수를 또다시 장밋빛으로 전망했다. 재정부가 9월 국회에 제출한 '2013년 국세 세입예산(안)'은 내년 총 국세수입을 올해보다 5.2%(10조5,000억원) 늘어난 216조4,000억원으로 추정했다. 국내외 주요 기관들은 내년 경제성장률이 잘해야 3%대를 기록할 것으로 내다보는데 세수가 5.2%나 늘어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재정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따라서 차기 정부가 이명박 정부와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한 최선책은 여당이 당장 새해 예산안을 국회에서 처리할 때 야당과 현 정부의 협조를 얻어 경기부양용 예산을 충분히 확보하는 것이다. 현 정부가 협조하지 않는다면 최소한 내년 상반기 중에 추가경정예산을 서둘러 편성해 응급용 재정의 '저수지'를 만들어놓는 것이 차선책으로 꼽힌다.
이마저 되지 않는다면 국세청과 지방자치단체 등이 올해처럼 부족한 세수를 메우기 위해 납세자들을 쥐어짜는 수밖에 없는데 이는 자칫 경기회복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 과세당국이 너무 강하게 징세활동을 펴면 기업이나 고소득자들은 세금을 피하려고 소득을 노출시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기업의 투자나 고소득자들의 소비를 위축시킬 수 있다고 재계 관계자들은 우려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