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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신 냉전시대] 3부. 백년대계의 자원정책 <3>사용후핵연료 처리 이젠 답 내놔야

-미국 노스애나 원전 르포

美는 원전 주변서 캠핑하는데… 한국은 불신 커 블랙아웃 위기

미국은 우리나라와 달리 원전부지 내에서 중간저장시설 용량을 사실상 ''무한정'' 늘릴 수 있어 사용후핵연료 처리에 큰 부담을 느끼지 않는다.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의 안전성에 대해 정부와 지역주민이 신뢰를 쌓아온 결과다. 저장시설 옆으로 일반차량이 오가는 도로가 뚫려 있을 정도다. /사진제공=노스애나원전·한국수력원자력

미국 버지니아주 노스애나원전 내부에 위치한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큰 사진)과 한국수력원자력이 경주에 짓고 있는 방폐장. /사진제공=노스애나원전·한국수력원자력


사용후 핵연료 저장 용량 10년 후면 포화상태

중간저장시설 건립 8년 걸려 '골든타임' 2년뿐

정부, 국민과 소통 나서고 경제논리로 설득을


사용후핵연료 처리장인데도 그 흔한 장화나 방진복은 주지 않았다. '자신 있다는 거겠지'라고 치부하면서도 속내는 '이게 뭐지? 안전교육도 없네…'였다. 그래서였을까. 태연한 척했지만 느껴지는 긴장감은 어쩔 수 없었다. 그나마 시설을 안내하는 페이지 캠프 노스애나 고문(원전인허가 담당)도 면바지에 반팔셔츠만 입고 있다는 게 위안거리였다. 사용후핵연료에 대한 르포를 쓰기 위해 미국까지 날아간 기자 역시 선입관에서는 자유로울 수 없었던 셈이다.

미국 버지니아주에 있는 노스애나원전 내부로 들어서자 축구장 만한 공터에 세워둔 6~7m 높이의 하얀색 콘크리트 기둥(캐니스터) 30여기의 위압감이 대단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공터 주변 철조망 말고는 출입을 통제하는 경비인원도 없었다. 불과 200m 옆 도로에서는 출퇴근 차량이 끊임없이 오갔다. '캐니스터' 안에는 인간에게 치명적인 부작용을 미칠 수 있는 농축우라늄이 포함된 사용후핵연료 다발 32개가 들어 있다. '이래도 되나'하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로 시설 경비는 일반 관공서보다 못했다. 기자의 표정을 읽은 듯 캠프 고문은 "캐니스터에서 나오는 방사성 물질은 인간이 자연에 노출되는 양과 비슷한 수준이며 표면을 맨손으로 만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주민들 역시 불안감이나 불편함이 없다. 기자가 찾은 날에도 원전 주변 숲에서 캠핑을 하거나 호수에서 배를 타는 주민들을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캠프 고문은 "핵연료 저장시설에 대해 불안감을 느끼는 일부 주민들과 1년에 한번씩 정기적인 간담회를 열어 소통하고 있다"고 했다. 역시 소통의 힘이다.

◇느긋한 미국, 진퇴양난의 한국=미국 원전과 달리 우리나라 원전의 사용후핵연료 처리 문제는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국내 모든 원전은 전기를 생산한 뒤 남은 사용후핵연료를 노스애나원전처럼 앞마당에 임시로 저장해뒀다. 문제는 앞마당이 수용할 수 있는 저장용량이 점차 포화단계에 이르고 있다는 점. 고리원전은 오는 2016년부터 저장시설이 가득 차고 이후 발생하는 사용후핵연료는 막대한 비용을 들여 옆 동네 원전으로 옮겨야 한다. 이런 임시방편을 다 써도 2024년에는 모든 원전의 앞마당이 가득 찬다.

미국 역시 같은 문제를 겪었을 텐데, 해법은 아주 간단했다. 앞마당 저장시설의 용량을 늘리는 식이다. 저장시설을 짓는 비용이 문제일 뿐 정부 인허가나 주민 반대는 걸림돌이 아니었다.



하지만 한국은 복잡하다. 관련법상 앞마당의 저장용량을 늘릴 수도 없다. 설사 늘린다고 해도 인근 주민들의 강력한 반대를 넘어서야 한다. 10년 뒤까지 특별한 대책이 마련되지 않으면 우리나라 전력생산의 27.6%를 차지하는 원전은 모두 중단될 수밖에 없다. 블랙아웃(대정전)의 현실화가 코앞으로 다가온 것이다.

제3의 지역을 선정해 '중간저장시설'을 짓는 것도 대안이다. 원전 앞마당에 보관된 사용후핵연료를 한곳으로 운반해 보관하는 식이다. 통상 중간저장시설을 짓는 데는 8년 정도 걸린다. 늦어도 2년 안에는 중간저장시설 후보지를 정해야 한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이 앞으로 2년을 한국 원전의 '골든타임'으로 보는 이유다.

사안이 시급함에도 정부는 손을 놓고 있다. 지난해 민간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사용후핵연료공론화위원회를 만들어 사실상 공을 떠넘겼다. 위원회는 연말로 활동이 종료된다. 한 위원은 "장관은 옷을 벗을 때까지, 국장이나 과장 등 실무진은 인사가 날 때까지 문제만 만들지 않으면 된다는 입장으로 보일 때가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 불신, 결국 경제논리로 풀어야=사용후핵연료 처리 문제에 대한 불신은 정부가 초래한 측면이 크다. 지난 1990년 안면도 사태가 대표적인 사례다. 정부는 안면도에 제2원자력연구소를 짓기로 하고 이를 안면도개발계획에 포함했다. 하지만 연구소는 간판일 뿐 이곳의 실제 용도는 중간저장시설이었다. 이런 사실이 언론에 폭로되면서 해당 지역을 중심으로 강력한 저항운동이 일었고 주무부처였던 과학기술처의 정근모 장관이 해임된 뒤에야 사태가 일단락됐다. 1994년에는 주민 9명이 살던 서해 굴업도를 후보지로 지정했지만 예상치 못한 활성단층이 발견되면서 스스로 건립계획을 포기했다.

정부가 결국 주민들의 이해를 구하는 과정을 생략하고 주먹구구식으로 저장시설 문제를 밀어붙이는 역사가 반복되면서 이제는 누구도 건드리기 어려운 골칫덩이가 돼버린 것이다.

미국에서 만난 전문가들이 제시한 해법은 단순했다.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이 첫 번째. 또 중간저장시설 건립이 해당 지역에 분명한 경제적 이익이 된다는 점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폴 슈메이커 샌디아국립연구소 본부장은 "뉴멕시코주에 최종처분시설(WIPP)을 선정할 때 광산이 주업인 해당 지역에서 유치 여론이 일었다"며 "정부가 직접 보상하지 않더라도 경제활성화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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