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K케미칼 사옥 첨단시스템 구축… 연간 4.4억 비용절감
삼성카드 전기료 절감-아파트관리비 연계 신사업 진출
'보조금 따먹기' 벗어나 민간 창의력 자극 정책 발굴해야
"8층 좌측편 사무실의 온도가 올라갔습니다. 데이터 확인해주세요."
지난 14일 오후 경기 판교신도시에 위치한 SK케미칼 사옥 지하 1층에 위치한 관제실에 들어서자 3명의 관제요원이 벽면에 붙은 모니터를 주시하며 끊임없이 움직이는 각종 수치를 확인하고 있었다. 어둡고 습한 일반 건물의 관제실은 보통 사람이 없어 썰렁하지만 이곳은 마치 실험실 같은 분위기를 내고 있었다.
관제실은 SK케미칼 빌딩에 구축된 '건물에너지수자원 관리시스템(BEWMS)'이 수집한 모든 정보가 모이는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곳이다. BEWMS가 건물 구석구석의 전력 및 물 사용량과 현재 온도, 통풍 상태 등 다양한 정보를 수집하면 관제실 컴퓨터가 이를 실시간으로 계측하고 분석한다. 에너지가 새어 나가는 작은 틈을 찾아 막는 게 관제실의 역할인 셈이다.
신로민 SK케미칼 홍보팀 과장은 "당장 전등 하나를 더 끈다는 절약 개념에서 벗어나 건물에서 쓰이는 에너지에 대한 데이터를 장기적으로 수집해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는 최적의 솔루션을 찾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건물에는 BEWMS 외에도 직사광선은 반사하고 자연채광을 위한 확산광만 통과시켜주는 천장 개폐장치인 '마이크로 루버' 같은 다양한 에너지 신기술 장치가 집결해 있다. 이런 장치들을 통해 연간 1,200톤의 이산화탄소를 절감하고 4억4,000만원의 에너지 관련 비용을 줄이고 있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직원 1,000여명인 사옥 빌딩을 관리하는 데 통상 에너지 비용으로 연간 11억원이 들어가지만 이 건물의 비용은 6억6,000만원에 불과하다.
에너지 신기술이 우리 경제의 새로운 먹거리 산업으로 부상하고 있다. 미국발(發) 셰일가스 혁명과 중동 정세불안, 동유럽권 내 러시아의 도발 등 에너지를 둘러싼 지정학적 요인이 급변동하고 있는 가운데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한국은 신기술 확보에 매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더욱이 재계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내년 1월1일부터 온실가스배출권거래제를 본격 시행할 예정이다. 배출권거래제는 일정 수준 이상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할 경우 시장에서 배출권을 사거나 정부에 과징금을 내는 제도를 뜻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에너지 민간기업의 관계자는 "속도가 지나치게 빠른 감이 있지만 온실가스 절감 자체는 전세계적인 흐름이 될 수밖에 없다"며 "에너지 신기술을 개발하고 상용화하는 데 민관이 절실한 심정으로 머리를 맞대야 한다"고 강조했다.
◇6대 에너지 신사업으로 2조원 시장 개척=정부는 에너지 신기술 개발을 적극적으로 독려하고 있다. 전담 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의 윤상직 장관이 주요 정책 중에서도 1순위로 올려놓을 정도로 비상한 관심을 가지고 챙기는 과제다. 산업부는 7월 6개 에너지 신사업을 직접 지정하고 오는 2017년까지 2조800억원의 시장과 1만200개 이상의 일자리를 마련하겠다는 청사진을 내놓기도 했다.
정부가 지정한 6개 에너지 신사업은 △전력 수요관리사업 △에너지 관리 통합서비스사업 △독립형 마이크로그리드 사업 △태양광 렌털 사업 △전기차 서비스 및 유료충전사업 △화력발전 온배수열 활용사업 등으로 나뉜다.
가시적인 성과도 나오고 있다. 효성그룹에서 갈라져나온 아파트 관리비 결제 서비스 업체인 이지스엔터프라이즈는 이달 말 삼성카드와 투자계약을 맺고 아파트 공용 전등을 발광다이오드(LED)로 교체하는 사업에 본격 진출할 예정이다. 아파트 입주민들은 전기비를 절약하고 기업은 절약한 전기비를 수익으로 가져가는 구조다. 이 사업이 특히 주목을 받는 이유는 금융사인 삼성카드가 아파트 관리비라는 전혀 새로운 영역에 뛰어들어 수익을 내려 한다는 점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수익창출의 벽에 부딪힌 금융사들이 이번 사업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며 "기술을 바탕으로 '지도에 없는 길'을 구축하는 사례"라고 설명했다.
◇민간기업 창의력 자극해야=전문가들은 에너지 신기술 사업이 우리 경제의 진정한 먹거리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관(官) 주도에서 벗어나 민간기업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수적이라고 지적한다. 현재 정부가 주도하는 대책들은 대체로 보조금을 지급하는 형태가 많아 '보조금 따먹기'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정부는 지난해 8월 '정보통신기술(ICT) 기반 에너지 수요관리 신시장 창출방안'을 발표하는 등 다양한 정책을 내놨지만 공기업과 정부의 재정지원 중심으로 모델을 만들어 민간 투자를 끌어들이는 데 한계를 보였다는 지적이 많다. 산업부가 올해 지정한 6개 신시장 사업 역시 한국전력과 발전자회사 등 공기업이 주도적으로 사업을 이끌어가는 분야들이 대다수다.
적극적으로 사업을 진행하기 어려운 한국만의 시스템도 문제점 중 하나로 꼽힌다. 빌딩이나 공장의 절전설비를 구축해 여기서 아낀 전기를 내다 파는 '네가와트 발전' 사업의 경우 외국과 비교해 한국의 전기요금이 저렴하고 요금 체계도 단순해 사업 활성화가 어렵다는 게 업계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박기영 산업부 에너지수요관리정책단장은 "시간대별로 차등 요금을 부과하는 수요관리형 요금제의 적용 대상을 확대하는 등 다양한 정책을 도입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