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체성분분석기, 적혈구현미경, 인공태양이 설치된 표면온도측정기. 11일 찾은 서울 잠실동 벤텍스 본사 연구소에는 대당 수천만원에 호가하는 인체측정ㆍ실험장기들이 빼곡히 놓여 있다. 상상하던 섬유업체 연구소와 전혀 다른 풍경이다.
고경찬(사진) 벤텍스 대표는 "섬유 소재를 개발하면 기능성을 입증할 수 있는 장비 테스트와 실험방법 개발 등 3단계를 모두 마쳐야 제대로 상업화에 성공할 수 있다"며 "실제 연구소에 있는 장비들은 모두 벤텍스가 자체적으로 만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1999년 설립된 벤텍스는 연구개발(R&D) 중심 기능성 섬유업체다. 직원 수는 45명에 불과하지만 기술라이선스 수입만으로 지난해 매출액은 280억원을 거뒀다. 일부 팀장급은 파격적으로 억대 연봉을 받고 있다.
이 회사는 중소기업임에도 불구, 고어텍스, 쿨맥스처럼 자체개발한 원단을 브랜드화해 시장에 알리는 데 성공했다. 노스페이스, 콜롬비아 등 세계적인 아웃도어업체들이 제품에 드라이존(Dry-Zone), 아이스필(Ice-Fil) 등 벤텍스의 브랜드를 표기한 꼬리표(태그)를 붙여판매 중이다.
성공의 비결은 간단하다. 유명 제품과 유사한 성능의 원단을 싸게 만드는 방식에서 벗어나 이를 뛰어넘는 제품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땀을 흡수하고 빠르게 말리는 소재인 드라이존은 쿨맥스에 비해 30% 이상 비싸다. 하지만 수분을 배출하는 시간을 40초에서 1초로 획기적으로 단축시켜 세계시장에서 인정을 받았다.
차별화된 브랜드 관리 전략도 눈에 띈다. 그는 "중소기업 입장에서 브랜드에 많은 광고비를 투자할 수 없기 때문에 어떤 기능이 있다는 걸 연상할 수 있는 간단하고 직관적인 이름을 붙였다"라며 "발열 원단은 '메가히트', 냉감 소재는 '아이스필', 아토피를 완화하는 원단은 '스킨닥터' 같은 식"이라며 브랜드를 알린 비결을 털어놨다.
아웃도어업계에서 이름을 알린 벤텍스는 곧 바이오메디컬 시장에 도전장을 던진다. 의약품 흡수를 돕는 특수 섬유기술인 DDS(Drug Delivery System)를 응용한 제품을 올 연말 출시한다. 첫 제품은 셀룰라이트를 감소시키는 원단인 '슬림닥터'다.
고 대표는 "중앙대 의대에서 6개월여간 임상실험을 한 결과 슬림제를 바르고 일반 옷을 입은 실험군보다 슬림닥터를 입은 실험군의 지방층 감소 효과가 45% 높은 것으로 입증됐다"며 "슬림닥터를 시작으로 혈액순환을 개선하는 체온감응형 생체활성화섬유 등으로 제품군을 확대해 나가겠다"고 계획을 밝혔다.
지속적인 연구개발을 바탕으로 벤텍스는 미국 고어, 일본 도레이 등을 넘어서는 세계적 섬유업체로 성장해나갈 계획이다. '섬유산업=사양산업'이라는 세간의 편견도 깨뜨릴 생각이다. 그는 "(수시로 트렌드가 바뀌는) IT와 달리 섬유는 한번 개발하면 라이프사이클이 5년 이상으로 길어 중소기업이 도전할 수 있는 매력적인 분야"라며 "더구나 인류가 살아있는 한 의류 수요는 영원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벤텍스는 내년말 또는 2014년 초를 목표로 상장을 준비 중이다. 현재 네오플럭스, 한화기술금융 등 벤처캐피털과 네오팜, 미쓰비시상사 등 국내외 업체들이 벤텍스에 이미 투자를 해놓고 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