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펀드시장은 2,900억달러 규모로 세계 13위권을 형성하고 있다. 세계경제포럼이 발표한 금융발전지수 순위 15위보다 상위에 위치하니 기특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펀드산업 선두 그룹과의 격차는 굉장히 크다. 미국의 펀드시장은 15조달러로 우리나라의 53배를 상회하고 있으며 뱅가드라는 자산운용사의 단일 주식형(인덱스)펀드가 우리나라 전체 규모보다 큰 3,473억달러를 기록하는 등 아직도 갈 길이 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는 영국과 캐나다를 추월해 미국의 절반 수준에 육박하는 펀드산업 지표가 있다. 바로 펀드 개수다. 2014년 3월 말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공모펀드는 3,360개로 세계 5위권에 랭크돼 있다. 투자자의 선택권 확대, 경쟁촉진 등과 같은 억지스러운 순기능을 내세울 수도 있겠지만 펀드규모 13위 국가가 펀드 수에 있어서는 5위라는 것은 단언컨대 불행한 현실이다.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우리나라 공모펀드의 평균 자산규모는 미국의 40분의1 수준에 불과한 4,700만달러로 자산규모 상위 15개국 중에서 최하위에 해당한다.
펀드 규모가 작으면 어떤 문제가 있을까. 우선 소규모 펀드는 투자재원의 한계 때문에 다양한 종목을 활용한 포트폴리오 구성이 어렵다. 펀드 운용비용 부담도 상대적으로 크다. 이러한 비효율과 비용은 펀드의 수익률 저하요인으로 작용한다. 비용요인을 극복하고 수익을 실현하는 펀드도 있겠지만 이 경우에도 비용부담이 수익의 축소를 유발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투자자·자산운용사·판매회사 누구도 소규모 펀드를 예견하고 시작하지는 않는다. 모든 참여주체가 창대한 미래를 기대하며 뜻을 모았지만 예상 밖의 부진한 결과로 소규모 펀드가 된 것이다. 그동안은 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제가 운용사와 판매사에 주로 맡겨져 왔다. 결과만 놓고 보면 운용사와 판매사 중심의 소규모 펀드 해소 노력은 후한 점수를 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혹자는 보수를 지급하는 고객에게 환매 등을 권유하는 금융회사의 진정성에 의구심을 표하기도 한다. 일정 부분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운용사나 판매사 입장에서도 규모의 경제가 달성되지 않는 소규모펀드는 인력과 설비와 같은 비용을 유발하고 고객의 평판을 갉아먹는 반갑지 않은 존재라는 점은 분명하다.
소규모 펀드 문제는 해소와 예방 차원에서 투자자와 운용사, 판매사 모두의 관심이 필요한 복합적인 사안이다. 그동안 투자자는 본인의 소규모 펀드에 대해서 해지·합병·전환과 같은 대책을 금융회사에 강하게 요구하지 않았다. 손실의 회피 또는 만회를 위해서는 손절매도 고려할 수 있는 냉철하고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그 누구도 아닌 나의 재산이기 때문이다. 소규모 펀드는 운용업계가 시류에 편승하기 위한 유사펀드를 남발한 데서 비롯된 측면도 있다. 자산운용업은 고객과 운용철학을 공유하는 것이라고 한다. 유행과 철학이 양립하기에는 어색하다. 자산운용 업계도 옷이나 정보기술(IT) 기기에나 어울릴 법한 트렌드를 과도하게 펀드산업으로 전파하지 않았는지 뒤돌아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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