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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경제 주체들이 경기부양을 위해 기준금리와 지급준비율을 내리며 유동성을 늘리고 있지만 한국은행은 여섯 달째 기준금리를 꽁꽁 묶었다. 미국 경기둔화, 유럽 재정위기 등 불안한 대외변수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경제가 완만한 침체를 의미하는 '마일드 리세션(mild recession)'에 빠질 가능성이 낮고 물가 상승세도 꺾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마일드 리세션은 경제성장률이 2분기 연속 마이너스를 보이는 상태를 일컫는다. ◇김중수 한은 총재 "마일드 리세션 없다"=한국은행은 8일 금통위 회의를 열어 기준금리를 3.25%로 동결했다. 6개월째 제자리다. 지난해 7월부터 모두 5차례에 걸쳐 기준금리를 올렸던 금통위는 올해 6월 0.25%포인트 올린 것을 마지막으로 7월부터 6개월 연속 기준금리를 묶었다. 각국 중앙은행이 기준금리와 지준율을 인하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지난달의 경우 유럽중앙은행(ECB)과 브라질ㆍ태국ㆍ호주ㆍ인도네시아 등이 잇따라 기준금리를 내렸고 중국은 지준율을 끌어내렸다. 한은이 이 같은 글로벌 통화정책 흐름에 보조를 맞추지 않고 마이웨이(My way)를 고집하는 것은 우리나라 경제가 스테로이드(강장제)를 맞을 만큼 취약하지 않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김 총재는 이날 금통위 이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마리오 드라기 ECB 중앙은행 총재가 마일드 리세션을 언급했지만 우리나라는 상황이 다르다"며 현재로서는 금리인하에 나설 수 없다는 뜻을 내비쳤다. 국내 경제를 바라보는 한은 시각이 다소 회의적으로 바뀐 것은 사실이다. 한은은 이날 내놓은 경제동향 보고서에서 올 들어 처음으로 '둔화 조짐'을 언급했다. 8월에는 상승세가 지속된다고 했고 9월과 10월에는 상승국면에서 횡보한다고 표현했고 11월에는 장기추세 수준에서 횡보한다고 진단한 것과 비교하면 시각교정이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물가불안에 "금리인하 난색"=한은이 기준금리를 내리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는 물가불안 때문이다. 정부가 소비자물가지수(CPI) 편입 품목을 교체하는 등 착시효과를 유도했지만 11월 CPI는 전년동기대비 4.2%나 올랐다. 금값 등을 포함한 옛 지수로는 4.6%에 달해 물가불안이 여전히 현재진행형 상태임을 보여줬다. 이 같은 고민은 금통위 통화정책방향에 고스란히 묻어 있다. 금통위는 "11월 중 CPI 상승률은 4%를 상회하였고 근원 인플레이션율도 전월보다 상승했다"며 "공공요금 인상, 높게 유지되고 있는 인플레이션 기대심리 등으로 물가상승률의 하락속도는 완만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밝혔다. 물가하락이 생각만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속내를 내비친 것이다. 이날 6명의 금통위 위원들이 만장일치로 기준금리 동결을 결정한 것은 물가상승 압력으로 운신의 폭이 좁아진 금통위의 고충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다. 몇 달 전만 하더라도 일부 금통위 위원들은 물가불안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기준금리를 인상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지만 지금은 성장둔화에 대한 우려감으로 이 같은 목소리는 잦아진 상태다. 결국 한은은 앞으로 수개월간 기준금리를 현 수준에서 동결할 가능성이 높으며 성장둔화가 확연히 나타날 경우에는 기준금리 인하카드를 내놓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반면 유럽 위기가 국제 공조 등에 힘입어 잦아들 경우 금리 인상에 나설 수도 있다. 이래저래 한은의 금리 정책 방향도 유럽 위기의 파괴력과 경기의 향방에 달려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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