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수(사진) 한국은행 총재가 기준금리 인하를 압박하는 정부에 작심한 듯 반격을 날렸다.
"미국ㆍ일본도 아닌데 어디까지 가라는 말이냐" "정책 엇박자 운운하는데 두 발로 한꺼번에 가라는 소리"라는 등의 평소 김 총재답지 않은 다소 '거친(?)' 발언들까지 꺼내면서 통화정책의 정당성을 길게 얘기했다. 지난해 0.5%포인트 인하에 따른 효과가 나타나는 상황에서 지금은 한은이 아닌 정부가 나설 타이밍이라는 것이다. 사실상 9일 예정된 금융통화위원회의 금리동결을 예고한 셈이다.
김 총재는 3일(현지시간) 아시아개발은행(ADB) 총회 참석을 위해 방문한 인도 델리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지난 1~3월 '정책조합(policy mix)'을 강조한 건 새 정부에 '이제 네가 나설 차례(now it's your turn)'라고 말한 것"이라고 밝혔다.
박근혜 정부 경제팀은 출범 이후 한은에 금리인하를 강하게 요구해왔다. 하지만 김 총재는 지난해 11월부터 금리동결을 이어왔다. 김 총재는 "지난해 7월과 10월 0.25%포인트씩 금리를 내려 완화 기조를 만들어 놓았다"며 "이렇게 되면 정부의 재정승수(재정지출의 효과)도 커진다"고 설명했다. 한은은 정책조합을 위해 금리를 미리 인하해 뒀다는 의미다.
김 총재는 "지난해 내린 0.5%포인트도 굉장히 큰 것"이라며 "한국이 기축통화를 쓰는 미국ㆍ일본도 아닌데 어디까지 가라는 것인가"라고 되물었다.
그는 정부와 엇박자를 내고 있다는 의견에 대해서도 "우리나라에서는 단정적이고 일사불란해야 한다고 생각해 조금만 차이가 나면 엇박자라고 한다"며 "한 발씩 가야 하는데 여러분은 두 발로 한꺼번에 가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했다.
김 총재는 "기업이나 채무자가 싼 이자를 원하니 한은에 '경쟁적인 금리인하(race to the bottom)'를 하라는 것인데 그런데 가서 (금리를 내려서) 다시 돌아온 나라가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지난달 금리동결이 물가상승을 우려해서가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그는 "금리를 동결하며 물가를 가장 처음에 언급한 것은 한은이 무엇을 하든 물가를 가장 먼저 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 총재가 금리인하에 대해 단호한 반대 입장을 밝힘에 따라 9일 예정된 금통위에서도 금리인하를 기대하기는 어렵게 됐다. 최근 유럽중앙은행(ECB)을 비롯해 신흥국 중앙은행이 잇따라 금리를 내리자 한은의 금리인하 가능성이 점쳐졌다.
김 총재는 엔저현상에 대해서는 "달러당 100엔까지는 빨리 올라갔는데 그 다음은 예측하기 쉽지 않다"며 "자동차ㆍ철강 산업 등은 경쟁이 심화하겠지만 석유화학 등은 일본 경기가 개선되면 함께 좋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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