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ㆍ엔 환율이 한때 770원대 밑으로 떨어진 것은 한마디로 달러화에 비해 원화보다 엔화가 더 약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금리인상 시기가 당초 예상보다 늦춰질 것으로 보이면서 막대한 자본수지 적자 추세가 이어지는 게 엔화 약세를 부추기고 있다. 반면 원ㆍ달러 환율은 연초 925원대에서 942원까지 올랐다가 수출업체의 선물환 매도 물량이 나오면서 강세로 돌아선 상황이다. 하지만 엔화 약세폭이 너무 크다는 분석이 우세해 원ㆍ엔화 환율의 하락폭도 점차 줄어들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엔ㆍ달러 환율 4년 만에 최고치=이날 도쿄 외환시장에서 달러화 대비 엔화 환율은 장중 한때 121.79엔까지 올라 지난 2003년 3월 이래 최고치로 올랐다. 그만큼 엔화 가치가 떨어졌다는 뜻이다. 이날 유로화 대비 엔화 환율은 158.62엔까지 올라 99년 유로화 도입 이후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파운드화에 대해서도 엔화는 이날 241.39엔까지 올라 92년 이후 최고 수준으로 상승했다. 이는 일본의 금리인상 시기가 국회 개원과 선거 등으로 인해 3월 이후로 늦춰질 것이라는 전망이 확산됐기 때문이다. 이 같은 엔화 약세로 글로벌 시장에서 일본 기업과 경쟁하고 있는 한국 수출업체의 채산성 악화가 우려되고 있다. 실제 이날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예상치 못한 엔저 현상으로 일본 수출 기업들의 순익이 늘어났다고 보도했다. 대부분의 일본 기업들은 올해 엔화가 달러화 대비 115엔, 유로화 대비 145엔 정도일 것으로 전망해 경영계획을 짰지만 예상치 못한 엔저로 수출 기업들의 순익이 크게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다. 실제 미 시장조사기관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북미 시장에서 현대자동차 등 한국 업체들의 판매는 10% 줄었지만 도요타의 판매는 두자릿수의 증가율을 기록했다. 미국 시장에서 현대차는 품질에 비해 저렴한 가격으로 승부수를 걸었으나 지난 3년간 엔화가 원화에 대해 30%나 하락함에 따라 일본 업체들과의 가격 차별성이 줄어들고 있다는 분석이다. 또 전자업체의 경우 삼성전자는 지난해 4ㆍ4분기 실적이 기대에 못 미치는 반면 일본의 엘피다메모리는 엄청난 이익을 챙기고 있어 대조를 보이고 있다. ◇올해 안 엔화의 상대적 강세 전망=올해는 원화와 엔화가 동시에 달러화에 대해 강세를 띨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예상이다. 올해 미국은 경기 둔화와 대규모 무역 적자가 예상되는 반면 유로 지역과 일본은 경기회복이 전망되면서 글로벌 달러화가 약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또 유럽중앙은행(ECB)과 일본은행이 금리를 인상하면 미국과 금리 격차도 줄어드는데 이는 달러 약세 요인이다. 특히 위안화의 사상 최고치 경신은 동아시아 통화의 동반 강세를 불러올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관심사는 어느 통화가 달러화가 비해 상대적으로 강세를 띨 것이냐는 점이다. 단기적으로는 일본의 금리인상 지연과 일본 투자자들의 해외투자 확대 지속 등으로 엔화 약세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유로화보다는 엔화가 상대적으로 강세를 띨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현재 엔화가 지나치게 저평가된 것으로 지적되는데다 일본은행의 금리인상이 이뤄질 경우 엔캐리 트레이드 유인이 감소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한은에 따르면 최근 엔화의 실질실효환율은 85년 9월 플라자합의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박용진 한국은행 해외분석실 과장은 “앞으로 일본의 금리인상 기조가 뚜렷해지면 일본 투자자들의 해외투자 수요가 일부 위축돼 엔화 절상 압력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