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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수원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박성훈(52·가명)씨는 자정까지 하던 영업을 오후9시로 앞당겼다. 저녁 시간에만 잠시 바쁠 뿐 이후에는 손님의 발길이 끊긴 지 오래됐기 때문이다. 그는 "덕분에 전기나 가스 등 에너지 요금은 아꼈다"고 씁쓸해했다. 수입이 줄어들면서 박씨는 집에서도 전기·수도·가스 요금 등 고정지출을 줄이는 데 집중하고 있다.
지난해 전기·가스·휘발유 소비가 급격히 줄어든 것은 좀처럼 경기가 살아나지 않은 영향이 크다. 경기침체 여파가 산업활동 전반을 무뎌지게 했고 이는 가계의 지갑도 얇게 하면서 에너지 소비마저 줄이고 있다는 얘기다. 지난해 주택용 전기 사용량이 외환위기 이후 처음으로 -2.1%를 기록한 것이나 주택용 도시가스 -8.1%, 무연휘발유 판매량 -2.6% 등 3대 에너지 모두에서 소비가 줄어든 것이 이를 보여준다.
가계뿐만이 아니다. 산업용 에너지 수요도 줄고 있다. 기업들은 기존의 전기·가스·석유에 의존하지 않고 상대 가격 면에서 장점이 있는 석탄 등으로 옮겨가는 사례를 늘리고 있다. 생산 관련 설비를 다른 에너지원으로 바꾸게 되면 다시 되돌리기가 쉽지 않다는 점에서 산업용 전기·가스의 수요 감소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 때문에 자칫하다가는 경기둔화를 넘어 불황의 골이 더욱 깊어질 수 있다는 우려감도 짙다. '소비위축→생산감소→고용위축→소득둔화→에너지 수요 감소→소비위축'의 악순환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김현제 에너지경제연구원 부원장은 "다양한 에너지원이 공급되는 한편 자동차 연비가 개선되고 난방 자재의 품질이 나아지는 등 기술의 발전도 이유일 수 있다"며 "그럼에도 가장 큰 원인은 경기가 전반적으로 가라앉은 데서 찾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가계에 가장 큰 타격은 소득의 둔화다. 가구별 가처분소득 증감률도 지난해 급격히 얼어붙었는데 지난 2010년 5.4%, 2011년 5.5%, 2012년 6.4% 등으로 상승흐름을 보였지만 2013년에는 1.9%로 뚝 떨어졌고 지난해 1·4분기에는 5.1%로 반짝 회복 조짐을 보이다 2·4분기에는 다시 2.8%로 추락한 뒤 반등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여기에다 취업자 증가 수는 꾸준히 일정선을 유지하고 있지만 청년 실업률은 해마다 높아지고 있다. 2012년 7.5%에서 2013년 8.0%로 오르더니 지난해에는 9.0%로 취업 상황이 악화됐다. 외식이나 영화·음악 등 여가생활에 소비를 집중하는 젊은 층의 소비여력이 떨어지면서 이들 업종에 활기가 돌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여기에다 설사 여윳돈이 생기더라도 소비보다는 노후대비를 위해 저축이나 연금에 가입할 뿐 시장에서 물건을 사는 데 쓰지 않는 추세가 강화된 것도 이유로 꼽힌다. 덜 먹고 덜 타고 덜 쓰는 문화가 에너지 소비 감소로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이 때문인지 소비심리는 갈수록 좋지 않다. 지난해 소비자심리지수(CSI)는 9월 107에서 12월에는 101로 내려앉았다. 임희정 현대경제연구원 경제동향분석실장도 "기업은 투자로 생산을 늘려야 하는데 수요가 줄어드니 소비 쪽 눈치를 보고 있고 소비주체인 가계는 기업에 임금상승과 고용증가를 원하고 있다"며 "기업과 가계 모두 경기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에 투자와 소비를 줄이며 에너지 소비가 감소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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