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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 1년] 달라진 세태
입력1998-11-20 00:00:00
수정
1998.11.20 00:00:00
「우리는 중산층」이라는 환상이 IMF태풍 앞에 산산조각이 난 1년이다.한국사회를 지탱하던 허리였던 직장인, 자영업자, 중소기업인들이 힘없이 허물어졌다. 가장의 실직으로 가정이 해체되고 노숙자가 늘어나며 생계형범죄가 잇따르고 있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갈곳이 없어 방황하는 젊은이들이 수십만명을 헤아리고 있다.
또 직계존비속 살인사건과 함께 노부모와 자녀부양을 포기하는 사례가 늘어나는 등 전통적인 가족관계가 무너지고 있다.
IMF이후 한국가정은 지난해에 비해 소득은 평균 30%, 저축이 40% 가량 줄어들었다. 또 우리국민들이 피부로 느끼는 삶의 고통지수가 IMF이전보다 무려 14배나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즉 1년새 우리의 생활이 14배나 나빠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량 실업=10월중 하루 평균 실업급여 신청자수는 1,588명. 9월말 현재 실업자수는 157만명으로 IMF직전인 지난해 10월보다 3배나 늘었다. 하루 3,700명씩 직장을 떠나고 있는 셈이다. 퇴직자중에서 스스로 퇴직한 사람은 24%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직장에서 내몰린 「IMF실업자」. 실업자 집계에서 빠진 취업포기자·잠재실업자 등을 합하면 실제 실업자는 230만~300만명에 이를 것으로 전문가들은 추산한다. 전국민의 4분의 1이 실업의 고통에 신음하고 있다.
노동부 중앙고용정보관리소가 발표한 3·4분기 구인·구직 및 취업동향에 따르면 전체 구인자가 11만8,924명인데 비해 구직자는 51만3,382명으로 일자리 1개에 4.3명이 경쟁하고 있다. 특히 대졸이상 학력을 원하는 일자리의 경우 구인자는 6,785명인 반면 구직자는 9만6,396명으로 경쟁률이 무려 14대 1를 넘는다.
내년도 2월 대학문을 나서는 4년제 대졸자는 19만7,000여명에 달하지만 이 가운데 취업자는 5만명에 그치고 있다. 누적된 대졸 미취업자 26만명까지 합하면 취업재수생이 무려 40여만명에 이른다.
한국노동연구원 최강식(崔康植)동향분석실장은 『고용조정을 단행한 기업이 생산량이 소폭 늘어난다고 해도 신규채용을 늘릴 가능성은 없다』며 『고실업 현상은 앞으로 3~4년간 지속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소득감소= 직장에서 내몰리지 않은 사람들은 봉급삭감으로 고통을 겪고 있다. 대부분 화이트칼라 근로자들의 봉급이 지난해 연말이후 30%정도 깎였다.
전경련 자유기업센터가 지난달 서울 및 신도시지역 25~49세 주부 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80.4%가 IMF이후 가구소득이 줄었다고 답했다. 월평균 가구소득이 185만8,000원으로 IMF이전의 249만9,000원에 비해 25.7%나 줄었다.
◇중산층 붕괴=직장인·도시자영업자 등 중산층 몰락이 현실로 다가왔다. 실업·감봉·자산디플레의 파고가 화이트칼라로 대표되는 중산층가계에 가장 큰 타격을 주었기 때문이다. 실업이나 봉급삭감으로 인한 소득감소를 주식 등을 처분해 메우려해도 거래 자체가 쉽지 않은데다 판다고 해도 큰 손실을 감수해야하기 때문이다.
부동산 가격 폭락은 깡통주택을 양산했다. 주식시장의 깡통계좌처럼 집값이 전세금보다 낮아 집을 팔아도 전세금을 다 돌려줄수 없게 된 집들이 생기는 바람에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세입자들이 속출했다.
서울 송파에 사는 대기업 차장인 金모(39)씨는 올해 보너스와 수당이 한푼도 나오지 않아 연봉이 3,500만원에서 35%정도 깎인 2,000만원대로 떨어졌다. 반면 자신의 재산목록 1호인 32평짜리 아파트는 2억~2억2,000만원에서 1억5,000~1억7,000만원대로 5,000만원이상 떨어졌다. 줄어든 봉급으로는 생활비·대출이자·자녀학자금을 대느라 간신히 버텨나가고 있다. 저축은 감히 엄두를 내지 못하고 새차를 구입한다든가 아파트평수를 넓힌다는 포부는 이미 사라져버렸다. 1년전까지만 해도 중산층이라고 자부했으나 이제는 스스로 하층민이 아닌가 하루에 몇번씩 의문을 갖는다.
현대경제사회연구원에 따르면 IMF이전에는 전국민의 53.1%가 중산층이라고 자처했으나 현재는 그 비율이 34.8%로 떨어졌다.
◇가정 해체=단란했던 가정의 해체가 눈에 띄게 늘고 있다. IMF이후 가장의 실직이나 소득감소로 전통적인 가족관계에 금이 가고 있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의 상담건수가 지난해 한달평균 80건에서 올해는 160건으로 두배가량 늘었다.
「아버지의 전화」 정송(鄭松)대표는 『전화상담건수의 절반이상이 실직한 가장으로 인한 경제문제를 호소하는 경우다. 가장의 실직으로 가정자체가 깨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올들어 9월까지 전국법원에 접수된 협의이혼 건수는 9만4,898건으로 지난해
7만575건보다 34.5%나 늘었다. 40, 50대 부부의 생활고 이혼도 두드러지고 있다.
IMF고아와 버려지는 부모도 크게 늘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기아·미아 등 보호대상아동은 97년 상반기 5,725명에서 올 상반기 6,353명으로 11%나 늘었으며 자식의 실직으로 복지시설에 위탁하는 노인수도 쩍 늘었다.
◇범죄 급증=생존위기에 내몰린 극빈층의 생계형 범죄가 늘고 강력범죄도 덩달아 늘어나고 있다. 또 직계존비속 살인사건이 하루에 몇건씩 발생하고 있다. 보험금을 타내기 위해 자식의 손가락마저 자르는 비정한 아버지도 나오고 있다.
대검에 따르면 올들어 9월말현재 살인·사기·절도 등 형사사건 공판건수는 15만6,687건으로 지난해보다 28.1%가 늘었다.
채무자가 돈을 갚지 않아 채권자가 제기한 가처분신청건수는 144만건으로 1년새 84%나 증가했으며 경매건수는 43만건으로 65.8%나 늘었다.
감봉과 실직으로 인한 개인신용불량자는 올들어 지난 8월말까지 200만명에 달하고 지난해말보다 55만명이 증가했다. 지난 한해동안 4건이던 법원의 소비자파산선고는 올 10월까지 무려 27배나 많은 108건에 달했다.
생활고를 못 이겨 자살하는 사람들도 크게 늘어 지난 1·4분기 자살자는 2,288명으로 지난해 1,683명에 비해 36%나 늘었다.
◇노숙자와 귀농자 증가=노숙자도 사회의 한 단면으로 자리잡았다. 지난해 전국에 1,000여명이던 노숙자가 최근 서울시에만 2,500명으로 늘어났고 연말까지는 3,300명을 넘어설 전망이다. 이중에는 여성과 가족노숙도 상당수 달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여관과 세방을 전전하는 잠재노숙자를 합하면 전국적으로 5만여명의 홈리스족들이 존재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서울시 조사에 따르면 시내 노숙자의 60%가 IMF 사태이후 실직하거나 일자리를 찾지 못해 길거리로 내몰린 사람들로 나타났다.
도시를 떠나 농촌으로 향하는 귀농도 하나의 풍속도로 자리잡았다. 귀농가구수는 9월말현재 5,218가구로 연말까지는 6,000가구를 넘어설 전망이다. 이는 지난해 귀농가구 1,842가구보다 3배이상 늘어난 것이다.
◇음주 및 외식문화=주머니가 얄팍해지면서 애주가들의 음주문화도 크게 달라졌다. 2차, 3차에 걸쳐 술을 마셨던 애주가들의 음주패턴이 IMF이후 1차로 끝나는 경우가 많아졌다. 술을 거의 먹지 않는 경우가 지난해 38.3%에서 46%로 높아진 반면 주2회이상 술을 먹는 경우가 27.1%에서 17.4%로 낮아졌다.
술을 마셔도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아 소주를 마시는 경우가 많아졌다. 즐겨먹는 주종은 IMF전에는 맥주(34.2%), 소주(27.6%)순이었으나 소주(33.9%), 맥주(26.5%)로 역전됐다. 올들어 소주판매량은 지난해에 비해 2.3% 늘어난 반면 맥주와 위스키는 각각 15.2%, 49.5%나 감소했다.
가족과 함께 외식회수는 월평균 2회에서 1.4회로 줄었고 월 3회이상 외식하는 비율도 25%에서 10.4%로 줄었다. 아예 6가구중에서 1가구는 외식을 하지 않았다.
◇교통량 감소=서울의 자동차 등록대수는 지난해말이후 지속적인 감소세를 보여 올들어 지난달까지 모두 4만3,700대가 줄었다.
유류가격인상으로 고속도로와 국도 교통량이 각각 15.4%, 11.5% 감소, 통행료를 물어야 하는 고속도로가 가장 큰 폭으로 줄었다. 연간교통사고 사망자수는 지난해 1만1,603명에서 8,600명으로 23.5% 줄어들었다. 또 서민들의 소득이 줄면서 자동차 판매대수도 무려 59.4%나 감소했다.
◇달라진 직장 분위기=을지로에 있는 그룹기업의 출근시간은 9시에서 7시로 당겨진 반면 퇴근시간이 6시에서 7시 이후로 늦춰졌다. 업무시간에도 정적만이 감돈다. 전화벨 소리만 울릴뿐이다. IMF 이전에 업무를 두고 흔히 벌이던 논쟁도 사라졌다. 지시만 있고 눈치만 볼 뿐이다. 임직원들 사이에 대화가 단절된 것은 당연하다. 또 머리가 아플때 심심풀이로 하던 컴퓨터 게임도 자취를 감췄다.
동료들간에 빚보증은 요구해선 안되는게 불문율이다. 팀원들은 물론 납품업체와 함께 하는 회식자리를 가진 지도 손꼽을 정도다. 어렵사리 자리를 마련해도 으례 소주집이고 점심때 회사를 방문한 손님을 구내식당으로 안내하는 일도 자연스러워졌다.
사무실의 전화를 사용하는 것 조차 눈치가 보여 사적인 전화사용은 로비에 있는 공중전화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이 회사 K과장(36)은 『IMF이후 직장생활에서 거품이 빠지고 있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지만 한편으로는 삭막한 느낌도 있다』고 말했다.【연성주·고진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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