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오는 9월 세계무역기구(WTO)에 쌀시장 개방 여부를 통보하기에 앞서 관세율 등 핵심 사안을 국회에 미리 보고하고 동의 절차를 밟기로 했다. 연말 쌀시장 개방이 사실상 불가피하다고 보고 이에 따른 후폭풍을 최소화하기 위한 물밑 작업에 돌입한 것으로 풀이된다. 우리나라는 1994년 우루과이라운드 타결 이후 20년 동안 쌀시장 개방을 미뤄왔다. 최근 필리핀과 WTO의 웨이버(쌀시장 개방 유예) 협상이 부결되면서 시장 개방론에 힘이 실리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와 산업통상자원부는 WTO에 수입 쌀 관세율 등을 정리한 '수정 양허표'를 제출하기 전 국회에 먼저 보고해 동의를 받을 방침이라고 16일 밝혔다. 농식품부 고위 관계자는 "통상 절차상 국회 동의가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워낙 민감한 사안인 만큼 국회와 긴밀히 협의해 최종 입장을 정리하자는 취지"라며 "6월 중 국회에 입장을 전달해 정부의 최종 방향을 확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관련법상 쌀시장 개방 절차에 따르면 정부가 수정 양허표를 WTO에 제출하면 WTO는 이에 대한 회원국들의 동의를 받아 인증 서류를 발송한다. 국회는 이를 바탕으로 비준 절차에 돌입한다. 문제는 국회 비준이 없어도 WTO 회원국들의 동의 절차만 마무리되면 사실상 쌀시장의 빗장이 열린다는 점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쌀시장 개방 쪽으로 무게가 기우는 상황에서 국회 동의 없이 개방 절차가 진행될 경우 후폭풍을 감당할 수 없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정부는 다만 쌀시장 개방과 유예의 양자택일 구도에서 벗어나 '제3의 길'을 찾는 작업도 병행할 계획이다. 농민단체들은 현재 40만8,700톤인 의무수입물량(MMA)을 늘리지 않고도 쌀시장 개방을 연기할 수 있다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농식품부 고위 관계자는 "국제법상 법률 자문을 모두 거쳤지만 MMA 증량 없는 시장 개방 유예는 불가능하다"며 "전면 개방 외에 가능한 여러 대안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필리핀은 현재 35만톤인 MMA를 80만5,000톤으로 늘리는 대가로 시장 개방을 늦추는 협상안을 내놓았지만 회원국들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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