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중국 국영은행인 공상은행(ICBC)은 최근 국내에 지점을 내기 위해 당국과 협의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최근 뱅커지가 발표한 세계 1,000대 은행 순위에서 1위로 올라선 공상은행은 현재 서울ㆍ부산 등 전국에 4개의 지점을 운영하고 있다.
중국 이외에도 신흥국 대형 은행들의 국내 진출이 속도를 내고 있다. 이들은 기업금융 등 공격적인 영업 의욕을 보인다. 미주와 유럽 출신 금융회사가 안전 위주의 소매영업을 펼치다 잇따라 한국을 떠나는 것과 대비된다.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의 대형 은행인 퍼스트걸프뱅크(FGB)를 비롯한 2곳이 지난달 국내 당국에 서울사무소 설치 의향을 밝혔다. FGB가 국내에 진출할 경우 중동계 은행으로는 다섯 번째 은행이 된다.
인도 최대 은행인 스테이트뱅크오브인디아(SBI)가 지난 3월 서울사무소를 개설한 데 이어 인도에서 두 번째로 큰 ICIC은행도 한국 진출을 추진하고 있다.
총자산이 406조원에 이르는 SBI는 5월 기업은행과 상호지급보증을 통한 금융 지원, 수출입 등 외환사업 협력, 상호 교육 프로그램 제공 등에 관한 포괄적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ICIC은행도 해외 18개국에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으며 총자산이 1,190억달러(약 134조원), 지점이 2,752개에 이른다. 이 은행은 지난달 국민은행과 계좌 개설, 외국환, 대출 등에 관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필리핀 최대 상업은행인 BDO은행(총자산 30조원)도 이달 서울사무소를 개설할 예정이다. 이 은행도 지난해 말 산업은행과 프로젝트파이낸싱(PF) 금융 활성화 등을 위한 MOU를 체결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세계 시장이 유럽에서 신흥국 중심으로 개편되면서 해당 국가가 금융회사를 확장하는 추세"라면서 "신흥국 금융회사는 최근 자국과 기업 투자가 활발한 한국에 관심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국내 금융회사의 해외 진출은 저조하다. 선진국은 물론이고 신흥국 역시 뚜렷하게 흑자를 내지 못하고 있다. 태국의 경우 1997년 외환위기 당시 국내 금융회사가 대거 빠져나간 뒤 태국 당국의 거부로 다시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최근 태국 당국이 외국계 금융회사를 허용하겠다는 취지를 밝혔으나 요구한 자본금만 7,000억원에 달해 투자할만한 회사가 없다.
국내 금융회사의 진출이 저조하다 보니 시너지 효과도 어렵다. 태국에 외환위기 직전 진출한 뒤 현재까지 영업 중인 삼성생명은 태국계 은행을 통해 보험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금융계 관계자는 "현지 은행만을 통하면 영업망 안정성이 떨어질 수 있다"면서 "국내 은행이 적극적으로 태국에 진출해 지점을 확보했다면 서로 협업을 통해 윈윈할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한 금융회사 원로는 "해외 진출은 장기간 돈과 인재를 투자해야 하는 일"이라면서 "금융회사의 해외 진출 역사는 길지만 단지 쉬다 오는 것으로 여기거나 당장 이익이 안 나면 철수하는 식이어서 성과가 없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런 상황에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이날 당국의 안이함을 질타했다. 신 위원장은 이날 간부회의에서 "금융사에 해외로 진출하라고 말할 뿐 금융당국이 적극적으로 도와주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있다"면서 "당국이 해당 국가의 당국과 직접 접촉을 통해 적극적으로 도와줘야 한다"고 주문했다. 미주와 유럽계 금융사의 잇따른 국내 이탈에 대해선 "상품 개발, 인허가 등과 관련해 외국 금융사들의 사전 협의 요구에 금융당국의 대답이 없다는 지적이 있다"면서 "금융사들이 금융위와 사전 협의 중인 모든 사안을 빠짐없이 조사해 보고하도록 했으며 내가 직접 챙기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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