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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디노미네이션' 실물자산 투자 '들썩'

정부정책 우왕좌왕… 부유층등 불안감 증폭<br>외화예금ㆍ金ㆍ미술품 등 투자수요 크게 늘어

“과거에도 화폐개혁을 한다며 가진 돈을 모두 은행에 맡겨놓으라고 해놓고선 제대로 바꿔주지 않아 손해가 막심했다. 이번에도 그런 일이 안 생길 거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느냐.” 성북동에 살고 있는 K(71)씨는 최근 정부와 정치권 내에서 리디노미네이션(화폐단위 변경)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되자 이 같은 불안감을 표출했다. 지난 62년 6월10일 정부가 실시한 리디노미네이션으로 인해 K씨는 전재산을 봉쇄당한 채 6개월 뒤에나 산업개발공사의 주식으로 연 15%의 배당을 받았다. K씨는 “당시 시장금리가 20~30%였음을 감안하면 당장의 불편함은 그렇다 치더라도 재산상으로 상당한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었다”고 회고했다. 정부가 리디노미네이션에 대한 분명한 방침을 밝히지 않는 가운데 K씨처럼 과거 화폐개혁을 직접 경험했던 부자 1세대는 물론 일반 국민들의 불안감이 높아지고 있다. 이들 중 일부는 리디노미네이션 단행을 대비해 실물자산을 가지고 있는 것이 유리하다는 판단 아래 벌써부터 외화예금과 금괴ㆍ부동산ㆍ미술품ㆍ주식 등에 대한 투자를 서두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강남에서 자산운용회사를 운영 중인 C사장은 “리디노미네이션이 화폐가치 하락이 아니며 과거처럼 예금인출 한도도 두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해도 상존해 있는 정치불안과 분배에 대한 불신 때문에 화폐단위 변경에 대해서도 불안감을 갖고 있다”며 “이를 보여주듯 고객 중 절반 가량은 이번 기회에 아예 외화로 자산을 분산시키고 싶다고 요청해 지난 한달 동안 수십억원을 외화예금에 가입했다”고 말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8월 말 6년 만에 최대 증가폭을 기록한 외화예금이 이달 들어서도 증가세를 유지하고 있다. 15일 현재 거주자 외화예금 잔액은 231억7,000만달러로 보름 동안 3억8,000만달러 늘었다. 이중 개인이 가입한 외화예금 잔액은 2001년 말 16억달러에 불과하던 것이 매년 큰 폭으로 늘어나면서 올들어 30억달러 가량 증가했다. 외화예금뿐 아니라 금에 대한 수요도 높아지고 있다. 하루 평균 1억~2억원 가량 판매되던 골드뱅킹(신한골드리슈) 상품은 최근 10억원까지 매출액이 늘었다. 강영진 신한은행 차장은 “부동산 외에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하고 있는 고객들이 리디노미네이션에 대한 언론보도 후에 수요가 급격히 늘고 있다”며 “최근 수요 및 문의가 워낙 많아 당초 6개월에 100㎏만 해오던 수입량을 매매에 대비해 추가적으로 늘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갖고 있는 돈을 부동산에 미리 투자해야 되는 것 아니냐는 문의도 은행 PB센터에 쇄도하고 있다. 화폐단위를 낮출 경우 실물자산 가치가 올라갈 것으로 믿는 사람들이 많은데다 충분한 공론화 과정이 없을 경우 일시적인 착시현상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만약 한국은행이 1,000대1로 단위를 변경할 경우 부의 상징으로 불리는 도곡동 타워팰리스(50B평형)를 100만원이면 살 수 있게 된다. 내국인뿐만 아니라 외국인들도 화폐개혁 논의가 활발해지자 가세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서울 무교동 파이낸스센터와 코오롱빌딩ㆍ무교빌딩 등을 매입해 짭짤한 재미를 봤던 싱가포르투자청을 비롯해 골드만삭스는 지난주 시중은행의 한 부동산 전문가를 찾아가 추가 매입에 대한 의사타진을 마친 상태다. 시중은행의 한 PB팀장은 “부동산, 주식, 금융상품 외에도 자산가치가 있는 미술품 등에 관심을 갖는 사람도 늘어나고 있다”며 “정부가 시행 여부조차 결정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고 있는 사이 발 빠른 부자들과 외국인들은 이미 행동에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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