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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고두현 지음 '늦게 온 소포'
입력2000-08-16 00:00:00
수정
2000.08.16 00:00:00
이용웅 기자
[독서] 고두현 지음 '늦게 온 소포'잊혀져간 생명에의 운율
「안산 쪽에서 눈발 몰려오는데/까치 한 마리, 아하/발이 시린듯 깃털 하나/떨어트리고 간다.」(끈)
깃털 하나에 마음이 기울다 보니 어느새 그것에 올라타 발해를 건너간다. 시인 고두현은 한 손에는 기러기 발목을 잡고 또 한 손엔 술대를 잡고 발해만 넓은 물길 하룻밤 새 일곱 번을 넘는 그대를 꿈꾼다.
남해의 청정 물 속에 얼굴을 감추고 날씬한 물고기의 눈망울을 마주하며 바닷물에 흘려보내는 미소를 머금었던 시인 고두현의 첫 시집 「늦게 온 소포」에는 취한 마음 언저리에 붙어있는 밥풀떼기 같은 정감이 까치 날개짓에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늦게 온 소포」에는 이런 사연이 있지 않았던가.
「밤에 온 소포를 받고 문 닫지 못한다/서투른 글씨로 동여맨 겹겹의 매듭마다/주름진 손마디 한데 묶어 도착한/어머님 겨울 안부, 남쪽 섬 먼길/해풍도 마르지 않고 바삐 왔구나」
그렇다. 고향 익숙한 그곳에는 어머님 혼자 있지 않았던가. 까치의 날개를 따라 발해를 넘나들었던 시인의 그 깊숙한 상상력은 고향 남해 바다에 묶어있는 속연(俗緣)의 소포에서 그다지 멀찌감치 떠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해서 시인은 까치의 이데올로기 보다 까마귀의 그 막역한 상념에 휘둘림을 피할 수 없었던 것이다.
「도토리묵에 막걸리 한 잔. 불콰해진 그가 취나물을 비비다 말고 한 소식 들려준다. 이 산에서는 까마귀가 길조래요. 까치는 죄다 파먹잖아, 곡식이며 열매며 속이 궁금해서 못 참는거라. 그런데 까마귀 곡식 해치는 것 봤어요? 사람이 그 속 모르고 재수없다 자꾸 타박만 주니….」(남해 금산 큰 새)
시인은 까마귀의 그 옹골진 내면에 더욱 이끌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현세 보다 죽음 저 편에 안족(安足)하고 있는 잊혀져간 생명에의 그리움이랄까.
얼룩진 벽지 벗겨내고 서리 앉은 곰팡이 집 단장을 하는 시인이 소리없이 내리는 눈 조각배 위에서 태어나 유배의 섬에 와 갇힌 자신을 응시하며 그 때 그 아버지를 떠올리니.
그가 까치의 깃털 하나에 떨고 있는 그 순간에도 까마귀의 날개짓에 숨어있으면서 잔상을 남기는 생명들에 이끌려가는 시집 「늦게 온 소포」는 유배지에 스스로 발길을 돌리는 시인의 옹골진 그러나 소연(蕭然)한 내면이 숨어 있는 집일 것이다. 민음사 펴냄.
이용웅기자YYONG@SED.CO.KR
입력시간 2000/08/16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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