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re going to make the future(우리는 미래를 만든다)." 매사추세스공대(MIT) 안의 또 다른 MIT로 불리는 미디어랩. 건물 외형부터 요란하다. 빨강ㆍ파랑ㆍ노랑ㆍ초록 등의 색깔을 입힌 도형들이 즐비하다. 3층 레고랩. 장난감 회사인 레고가 후원해 붙인 이름이라 그런지 연구실 분위기는 마치 아이들이 옷을 마구 벗어던져 놓고 노는 분위기다. 여기저기 원피스에 재킷 등이 걸려 있고 전기미싱도 눈에 띈다. 4개의 레고랩 연구팀 중 하나인 이곳은 섬유와 IT를 결합한 신소재 옷을 연구한다. 툭툭 던져놓은 조각천도 미디어랩의 아이디어가 만들어낸 작품인 셈이다. 건너편에는 미디어랩의 삶의 질을 높인다는 철학을 엿볼 수 있다. 네트라(NETRA)로 불리는 시제품은 휴대폰에 작은 장치로 스스로 시력은 물론 근시ㆍ원시 등을 측정할 수 있다. 비싼 첨단장비 가격을 낮춰 제3세계 아이들이 시력을 잃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지난해 3월 기업 후원으로 오픈한 미디어랩 신관은 전시실 분위기다. 모두 통유리로 연구실을 오픈했다. 연구영역은 틀려도 자유롭게 상상한다는 미디어랩의 철학을 공유한다는 의미라고 한다. 알렉산드로 칸 미디어랩 홍보담당은 "다양성과 소통을 바탕으로 오픈된 공간은 다른 전공자들의 아이디어가 융합되고 발전될 수 있도록 한다"고 말했다. ◇상상력이 현실이 된다=2층 휴 헤르 교수의 연구실을 찾았다. 헤르 교수는 암벽등반으로 두 다리를 잃고 의족연구에서 출발해 지금은 장애인은 물론 비장애인도 이용할 수 있는 첨단보행기를 연구한다. 미디어랩의 생체공학그룹장인 그는 영화 아바타에 나온 군인들이 타고 다니는 덩치 큰 로봇은 아니지만 좀 더 빠르게 힘들이지 않고 걷는 방법을 생각한다. 오는 2050년쯤이면 전우치의 축지법이 현실이 되는 셈이다. 헤르 교수가 부재 중인 연구실에는 젊은 연구원이 책상 위에 다리를 올려놓고 화이트판에 낙서(각종 공식)를 하고 있었다. 말을 붙이기도 힘든 그의 연구는 엉뚱했다. 의족이 길을 찾는 시스템을 개발 중이다. 미디어랩은 '상상력의 천국'을 넘어 '상상력을 보여주는 곳'이다. 아이디어를 내놓고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아이디어를 시제품으로 만든다. 박사 과정인 정재우 연구원은 "미디어랩은 여기저기 아이디어의 깃발을 꽂는다"고 말했다. 정 연구원은 서울대 음대를 졸업하고 컴퓨터공학박사 과정으로 미디어랩에 들어왔다. 그가 보여주는 엉뚱함은 휴대폰을 이용해 건물 내에서도 길을 찾는 것이다. 휴대폰의 소형 프로젝션을 바닥에 비추면 화살표가 나타나 길을 알려준다. 미디어랩의 특이한 점은 석사과정이 없다는 것. 2년 정도의 테스트 과정을 거쳐 박사과정에 들어간다. 2년 동안 공학의 기초가 증명된 만큼 박사과정에서는 공학 수업이 없다. 오히려 인문학 분야인 심리학ㆍ감성 등의 과목이 더 많다. 기술을 통한 인간의 삶과 사회의 변혁이라는 미디어랩의 철학이 담겨 있다. ◇산학 연계의 모범답안 미디어랩=미디어랩 여기저기 어울리지 않는 깔끔한 슈트 차림의 신사들이 눈에 띈다. 아이디어를 찾아온 스폰서 기업인들이다. 1년에 두 번 있는 스폰서 위크는 미디어랩 산학 연계의 백미다. 스폰서라고 돈만 기부하는데 그치지 않고 연구원들과 끊임없이 소통한다. 스폰서 위크에는 기업의 상품개발뿐 아니라 마케팅ㆍ디자인 등 다양한 구성원들이 참가해 연구원들의 시제품을 평가한다. 감성기술을 연구하는 슈라게 나나약카라 박사는 "기업들과의 교류에서 학생들은 아이디어의 단점을 발견하고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킨다"고 설명했다. 그래서인지 미디어랩 졸업생 대부분이 졸업 후 기업이나 벤처를 선택한다. MIT는 벤처를 직접 지원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미디어랩 밖에는 이들을 지원하기 위한 펀드가 줄을 섰다. 미디어랩 산학 연계의 또 다른 특징은 독립. 연구원들은 연구소에 투자하는 기업이나 개인으로부터 독립적이다. 심지어 지원을 받을 때도 연구계획서 등을 내지 않는다. 미디어랩에서 나오는 특허를 스폰서들은 이용할 수 있지만 아무리 많은 돈을 내도 소유할 수 없다. MIT의 재산이다. ◇한국형 미디어랩의 성공조건은=지난해 8월 지식경제부는 IT명품 인재 육성을 위해 연세대를 한국형 MIT 미디어랩으로 선정하고 연간 165억원을 10년간 지원하기로 했다. 사업책임은 '애니콜 신화'의 주인공인 이기태 전 삼성전자 부회장이 맡았다. 연세대의 미래융합연구소가 과연 한국판 '상상발전소'로 성공할까. 미디어랩 관계자들은 연구소를 IT명품 인재라는 틀에 가두지 말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인간의 언어습득과정을 연구하는 뎁 로이 교수는 "자유롭게 상상한다는 미디어랩의 철학을 공유해야지 미디어랩을 모방하려 들면 결코 성공할 수 없다"며 "인도와 아일랜드에서 미디어랩을 수입, 운영하다 실패한 것도 목적과 수단을 혼동했기 때문"이라고 따끔한 충고를 보냈다. 한국인들은 왜 스티브 잡스가 나오지 않을까라고 말한다. 잡스는 기술인이기도 하지만 청바지와 티셔츠를 즐겨 입는 자유로운 사상가이기도 하다. 단순한 기술개발은 기업의 몫이다. 한국판 미디어랩이 수평적이고 개방된 연구환경에서 자유로운 의사소통과 창의적인 사색을 통해 기술과 인간 삶의 관계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인재를 만들어야 한다고 MIT 미디어랩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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