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투자의 창] 그리스의 안일함과 독일의 고집

김경록 미래에셋은퇴연구소장


그리스와 채권단의 부채 합의안이 의회를 통과하면서 일단 급한 불은 끄게 됐다. 그리스는 860억유로를 지원 받는 대신 긴축정책을 실시하고 500억유로 규모의 국유자산을 내놓는다. 그리스가 괜히 매를 벌었다는 평가도 있고 독일이 재차 돈을 지원하면서 한 걸음 물러섰다는 말도 나온다. 이번 협상에서 그리스는 준비가 미흡했고 독일은 너무 강경했다. 최근의 그리스 부채 문제를 이해하려면 지난 1992년에 있었던 영국의 환율조정 메커니즘(ERM) 탈퇴 사건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유럽은 단일통화권으로 가기 위해 1979년 ERM 체제를 출범시켰다. ERM 체제에 가입하려면 독일 마르크화를 기준으로 자국 화폐 가치가 6% 이상이나 이하를 넘어서면 안 됐다. 영국은 우여곡절 끝에 1990년 10월 ERM에 가입했다. 그런데 서독과 동독이 통일을 하게 되면서 독일은 막대한 돈을 풀었고 인플레이션을 우려해 2년 동안 금리를 열 차례나 인상했다. ERM 체제에 가입한 국가들 역시 금리를 덩달아 올릴 수밖에 없었고 이는 국내 경제의 긴축으로 이어졌다. 가입국가들의 볼멘소리가 있었지만 당시 독일 중앙은행 총재는 "국내 사정이 최우선"이라며 금리인상 조치를 고수했다. 독일은 '한다면 하는' 나라였다.

마침내 핀란드가 1992년 8월 탈퇴하면서 이탈리아와 스페인의 통화 가치도 폭락했다. 영국은 최대한 버텨보려고 했다. 이때 소로스가 운용하는 헤지펀드가 영국 중앙은행을 가차 없이 공격했다. 결국 1992년 9월16일 영국은 하루 동안 금리를 두 차례에 걸쳐 10%에서 15%로 인상하고 무려 33억파운드를 쏟아부었지만 공격을 버텨내지 못하고 ERM을 탈퇴한다. 헤지펀드에 영란은행이 항복한 치욕적인 사건이다. 단일통화제도가 얼마나 취약할 수 있는 지, 그리고 독일이 주변국의 사정에 관계없이 원칙을 얼마나 강하게 지켜나가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다.



이번 협상에서 그리스는 독일을 과소평가했다. 그리스는 적어도 '그렉시트(그리스의 유로존 탈퇴·Grexit)라는 카드를 완전히 준비해놓은 후 협상을 진행해야만 했다. 독일 정도의 국가와 협상을 하려면 자동차의 핸들을 뽑아버릴 정도의 각오를 갖고 '치킨게임'을 벌여야 한다. 독일 역시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었지만 지나치게 원칙을 고수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그리스를 단순한 경제 수치만으로 평가하지 말고 그리스 국민들의 삶과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의 구조적 문제점까지 감안해야만 했다.

그리스는 채권단과 합의를 이뤘지만 약속을 지켜나가기가 어려울 것이다. 독일은 1992년 ERM 붕괴사건을 되돌아봐야 한다. 그리고 합의를 이행하는 과정에서 융통성을 보일 필요가 있다. 분명히 후유증이 표면에 드러날 일이 있을 것이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울경제 1q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