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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 포커스] 이대로 가다간 또 정권 실세 놀이터로

2인자 찾지 못할 때마다 정치 외풍 비집고 들어와<br>●하나금융 후계로 본 CEO 리스크<br>승계과정 체계화로 금융권 관계자들이 CEO 맡는 관례 정착을



신한 사태를 겪었던 신한금융지주는 지난해 최고경영자(CEO)의 승계 구도를 체계화하기 위해 '예비후보군'을 두는 방안을 마련했다. CEO 퇴임 이후 자연스럽게 승계가 이뤄지지 않아 권력다툼 등의 내홍이 심화됐던 데 대한 반성이었다. CEO 권력승계로 다툼을 벌였던 금융회사는 신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그만큼 국내 금융회사에 CEO 승계문제가 체계화돼 있지 못하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틈새를 자연스럽게 비집고 들어온 게 바로 정치권이다. 과거에는 금융업이 제조업에 비해 협소한 탓도 있었지만 금융에만 일평생 몸을 바쳐온 뱅커들이 CEO로 올라섰다. 정치의 외풍을 덜 탔다. 하지만 현 정부 들어서는 상황이 확 달라졌다.

실제 대형 금융지주회사의 수장을 비롯해 핵심 CEO 상당수가 대통령과 끈이 닿거나 대통령 주변의 인사들과 연결고리를 통해 자리에 올라섰다. 정권이 바뀌면 CEO들도 대거 바뀌는 게 아니냐는 우려감을 낳게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CEO 교체 리스크가 증폭될 수 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이런 우려는 당장 하나금융지주에서 발생했다. 김승유 회장이 사실상 물러나는 것으로 굳어졌지만 김 회장을 제대로 대체할 2인자를 찾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내부 출신이 바통을 이어받는 것으로 방향이 서고 있지만 차기 회장을 고르는 경영발전보상위원회 멤버들도 마땅한 인물군이 없어 고민을 거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하나금융뿐만 아니라 올해 말 정권 교체와 함께 무더기 교체가 이뤄질 다른 금융지주회사 회장들의 후임 구도에서도 이어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현 회장들의 뒤를 이을 2인자가 뚜렷이 드러나지 않은 상황이고 이런 국면이 이어지면 자연스럽게 차기 정권의 실세들이 또다시 자리를 차지할 것이 확실시된다.

다소 비약일 수 있지만 금융회사의 CEO 자리가 정치인이나 정치색을 띤 사람들의 놀이터가 될 것이라는 얘기다.



당장 임기가 2년가량 남아 있는 금융지주 회장 상당수는 이명박 정부와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강만수 산은지주 회장은 정부 출범과 함께 초대 기획재정부 장관을 지냈다. 대통령실 경제특별보좌관,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 위원장을 지낼 만큼 이 대통령의 최측근 인사다. 지난해 3월에 취임해 오는 2014년에야 임기가 만료되지만 올해 선거 결과에 따라 내년 이후 거취에 영향을 받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팔성 우리금융지주 회장과 어윤대 KB금융지주 회장도 'CEO 교체리스크'를 극복할지 여부는 미지수다. 정당한 공모절차를 거쳐 임명됐지만 현 정권의 '친정부 인사'로 분류되고 있는 탓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황영기 전 KB금융지주 회장 사태를 예로 들며 금융권 실세들이 '출구전략'을 세워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돈다. 황 전 회장은 우리은행장 재직시절 파생상품 투자손실 문제를 이유로 금융감독원의 집중검사 끝에 2009년 결국 옷을 벗었다.

전문가들은 다만 금융은 절대로 정치바람을 타면 안 되는 곳이라고 입을 모은다. 실제 강정원 전 국민은행장은 선진연대 등 정치권에 줄을 대 연임을 하려 했지만 인사와 대출청탁으로 조직문화는 무너졌고 2010년에는 883억원(지주기준)의 순이익을 내는 데 그쳤다. 이 때문에 내부 인물 중 차기 CEO를 할 수 있는 인물을 미리미리 키워둬야 한다는 말하고 있다.

금융 당국이 지난해 12월 금융사 지배구조에 관한 법을 입법예고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제2의 신한 사태를 막고 CEO 유고시에도 경영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승계과정을 만들게 한 것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애초부터 정권 측 인사보다는 금융권 관계자들이 CEO를 맡는 관례가 정착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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