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영 현대카드 사장은 대기업 최고경영자(CEO)치고 오찬 약속을 많이 잡지 않는 편이다. 사업상 부득이한 점심식사 자리가 아니면 식사도 간소하게 해결하고 사내업무를 처리해야 하는 경우가 잦기 때문이다. 심지어 정 사장은 해외 출장길에 올라서도 온라인망을 통해 사내 일을 본다. 새로운 경영구상 아이디어를 얻거나 해외진출 확대 기회 등을 엿보기 위해 1년에 3분의1 이상을 국외에서 보내는 탓에 비행기에서조차 업무를 봐야 할 정도라고 한다.
이 정도면 일벌레 수준을 떠나 일중독(워커홀릭ㆍworkaholic) 수준이라고 할지도 모른다. 금융권에는 유독 정 사장과 같은 워커홀릭들이 많다. 김승유 하나금융지주 회장도 1인3역을 맡느라 하루 24시간이 부족할 지경이다. 그의 공식 직함에는 하나지주 회장 외에도 미소금융중앙재단 이사장, 자립형사립고등학교인 하나고 이사장이 붙는다. 김 회장은 1주일에 최소한 두세 번은 서울 종로에 위치한 미소금융중앙재단을 들러 두세 시간씩 업무보고를 받고 사업을 점검한다. 하반기 중에는 전국 각지에서 40~50여곳에 달하는 미소금융지점을 추가로 열어야 하기 때문에 그는 수시로 지방 출장길에도 나서야 한다. 미소재단의 한 관계자가 김 회장에 대해 "철인 3종 경기 선수 같다"고 평가했을 정도다. 총 자산 196조원의 대형 금융그룹을 이끌기도 시간이 빠듯할 텐데 대단한 정신력이라는 것이다.
이백순 신한은행장도 일벌레로는 빠지지 않는다. 최근에는 여름휴가조차 아예 갈 생각을 하지 않고 업무만 보고 있다. 행장 취임 갓 1년을 넘겼는데 거의 전 부서의 대내외 업무 내용을 담당임원 수준으로 파악하고 있어 담당 부행장이나 본부장급 임원들은 자칫 수치 하나라도 잘못 보고했다가는 그 자리에서 들통이 나 호된 질책을 듣는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대형 금융사 CEO는 수백조원 단위의 자산을 운용해야 하기 때문에 자칫 한번의 경영판단 실수라도 했다가는 대형 금융사고로 이어진다는 긴장감을 어깨에 짊어지고 산다. 그래서 금융사 CEO는 24시간 업무에 매여 일중독증을 달고 산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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