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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한 줄 어디냐" 우왕좌왕… 유력 후보 찾아가 충성맹세까지

M&A등 주요 현안은 뒷전 들끓는 說에 조직 사분오열<br>인사혼란 악순환 막으려면 회장 선출기간 최소화해야

박근혜(가운데) 대통령이 지난해 10월 서울 플라자호텔에서 열린‘서경 금융전략포럼’에 참석해 주요 금융지주 회장들에게 자신의 금융산업 비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박 대통령 왼편으로 강만수 전 산은금융지주 회장과 이팔성 우리금융지주 회장이, 오른편으로 김인영 서울경제 사장과 어윤대 KB금융지주 회장이 앉아 있다. /서울경제DB

금융권의 정치권 줄대기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정치금융'이라는 단어가 나올 정도다.

그나마 이명박 정부 때는 확실한 줄이 있어 그곳만 뚫으면 됐다. '왕차관'으로 불렸던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이 이끌었던 선진국민연대를 등에 업은 강정원 전 국민은행장이 대표적인 사례다. 선진연대 출신 인사를 고문으로 앉혀 1억원이 넘는 연봉을 제공하고 선진연대의 주요 간부가 설립한 업체에서 수억원대의 와인을 사들였다. 강 전 행장의 연임 등을 위한 것이었다. 라응찬 전 신한금융지주 회장의 이상득 전 의원에 대한 3억원 제공 혐의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 들어서는 실세가 누구인지 몰라 우왕좌왕하는 촌극마저 벌어지고 있다. 청와대에 잘못 줄을 댔다가는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말에 누구한테 선을 댈지 고민하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우리금융지주의 경우 전문성만 있으면 최고경영자(CEO)에 오를 수 있다는 희망(?)에 개인적으로 뛰는 이들도 많다. 이 와중에 조직은 엉망이 되고 영업력은 후퇴하고 있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회장 선임 바람에 휘둘리는 금융사의 혼란을 줄이려면 선임기간을 최대한 줄여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계속되는 진흙탕 싸움=우리금융과 KB금융은 최근 개점휴업 상태다. 그룹 지배구조가 바뀔 예정인데 이 경우 인적 쇄신까지 이어지는 탓이다. 임직원들 입장에서는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 것이다. 금융권의 한 고위관계자는 "당장 내 자리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판에 일이 제대로 되겠느냐"며 "3년마다 반복되는 CEO 리스크가 큰 상황"이라고 전했다.

우리금융은 주요 사업이 사실상 잠정 보류됐다. 우리금융은 신임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 LA한미은행을 포함한 미국 현지 교포은행 인수추진 사업은 유보할 것으로 알려졌다. KB도 올해 들어 ISS 사건 이후로는 제대로 된 인수합병(M&A)이나 중장기 업무전략이 중단됐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부 임직원은 외부만 바라보고 있다. 부행장급 임원은 정치권이나 금융당국에 회장 인선 상황을 알아보느라 바쁘다. 일부 임원은 줄대기에 나서는 사람도 있다. 과거처럼 확실한 선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외풍을 타는 구조상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마음이다. 지주 회장이 누가 오느냐에 따라 은행장이 정해질 것이고 은행장에 따라 은행 임원 자리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에는 금융지주 회장의 임기가 최대 5년이라는 얘기가 많다. 정권 초에 회장에 오르는 것이기 때문에 잘만 하면 이번 정권이 끝날 때까지 회장직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임직원들 입장에서는 사활을 걸 수밖에 없는 이유다.

실제 우리금융은 내부 눈치보기가 심각하다. 신제윤 금융위원장이 "우리금융의 정치화가 문제"라고 지적했을 정도로 우리금융의 줄대기는 뿌리가 깊다.

과거 한일은행과 상업은행이 대등합병해 양측 간 감정의 골이 아직도 남아 있고 인사에서 출신 은행이 고려될 정도여서 상대방에 대한 마타도어(흑색선전)가 적지 않다. 우리은행 일각에서는 "이팔성 회장 덕을 본 사람이 내부적으로도 많은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CEO가 바뀌면 인적 청산도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KB도 갖가지 소문이 난무한다. D씨는 이미 차기 회장 후보로 유력한 사람을 찾아가 '충성맹세'를 했다는 말도 나돈다. 회장이 되도록 도울 테니 자기도 자리를 보전해달라는 말이다. 특히 KB는 지주회장 임기와 국민은행장 임기가 맞물려 있어 은행장을 노리고 뛰는 이들도 많다.

금융권 관계자는 "정부가 대주주인 우리금융은 물론이고 민간사인 KB까지 회장을 뽑을 때 정치권과 당국의 눈치를 봐야 하니 외부에 줄을 대려는 이들이 자연히 나올 수밖에 없다"며 "외부에 줄을 댄 직원이 임원으로 승진하는 현재의 구조로는 금융산업의 미래는 없다"고 말했다.

◇회장 선출기간 최소화해야=이 때문에 금융사들의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선출기간을 줄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새로운 회장을 선출해 각종 부작용을 줄이자는 얘기다.

보통 회추위가 꾸려진 뒤 취임식이 마무리될 때까지 45~60일 정도가 걸린다. 1차 후보군을 추리고 이 중에서 쇼트리스트를 만들고 면접도 봐야 한다. 이 기간을 거꾸로 셈하면 우리금융이나 KB는 다음달께나 차기 회장의 윤곽이 드러난다. 이 기간을 최대한 줄이자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인 셈이다. 차기 회장이 빨리 나오게 되면 그만큼 외부 줄대기도 줄어들 수밖에 없고 조직 추스르기도 빨리 시작할 수 있다. 이 회장이 사의를 표명한 우리금융을 비롯해 KB도 사실상 지주 회장이 새 업무를 할 수 없는 것을 포함해 조직을 운영하는 데 한계가 있다.

금융권 고위관계자는 "선출기간이 길어지면 그 사이에 정부의 개입논란이 있을 수 있고 조직이 더 망가질 수 있다"며 "올해는 주요 금융지주사들의 선출기간이 겹치는 만큼 최대한 이를 단축해 혼란을 줄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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