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소개했던 바둑에서는 뤄시허가 최철한에게 자기 대마를 잡힌 상태로 이리저리 몸부림을 치면서 최후의 일각까지 버티는 모습을 보인 바 있다. 오늘은 뤄시허에게 대마를 잡힌 조치훈이 처절하게 활로를 찾아 헤매는 과정을 보여준다. 사실은 진작 돌을 던져 버릴 수도 있는 상황이고 오타케 히데오(大竹英雄) 같은 사람이었다면 이미 싹싹하게 돌을 던지는 매너를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조치훈은 마지막까지 가서 숨이 탁 끊어지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돌을 던졌다. 백22 이하 34는 뤄시허의 정확한 수읽기를 보여준다. 그러나 김명완6단은 아주 쉽게 끝내는 수순이 있다면서 참고도의 백1 이하 5를 검토실의 판 위에 그려놓고 있었다. 뤄시허가 실전에서 보인 수순을 확인하고 난 김명완은 슬그머니 참고도를 지워 버리고 말했다. “실전쪽이 더 확실하군요.” 서반에 우하귀에서 신수를 선보일 때만 해도 흑에게 ‘선착의 효’가 있던 바둑이었다. 우변에서 뤄시허가 과감한 대마사냥을 선언했을 때까지도 흑의 형세가 괜찮았다. 그런데 조치훈이 흑대마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수순착오로 무너져 버렸다. “나이 탓이겠지요?” 검토실의 기자 하나가 조훈현9단에게 묻자 조훈현은 애매하게 웃었다. 조치훈은 48세. 조훈현은 51세. 곁에 있던 천풍조7단이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나이 탓이 절반, 술 탓이 절반일 겁니다.” 134수끝 백불계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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