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새로운 곳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새로운 시각을 갖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 프랑스 대문호 마르셀 프루스트의 말처럼 사람은 여행을 통해 미지의 세상을 만나고 새로운 인생을 경험한다. 현대인에게 여행은 단순한 오락이나 휴식 그 이상을 의미한다. 그런 이유에선지 여행을 모티브로 한 영화는 오랫동안 사랑을 받았다. 여행을 통해 진정한 정체성을 찾는 '로드 무비(road movie)'가 유행할 만큼. 어떤 의미에서 영화를 보는 행위 자체도 작은 여행이 아닐까 싶다. 영화 '안경'은 푸른 하늘과 에메랄드 빛 바다를 비추며 관객을 스크린 속으로 초대한다. 일본 남부 지방의 어느 한적한 바닷가에 타에코(고바야시 사토미)라는 여성이 찾아온다. 그녀가 이곳을 찾은 이유는 단지 휴대폰이 터지지 않을 만큼 후미졌기 때문. 타에코는 민박집에 장기 투숙하게 되고 그곳에서 의문의 중년 여성 사쿠라(모타이 마사코)와 고등학교 생물 교사 하루나(이치카와 미카코)를 만난다. 이들은 아침마다 우스꽝스러운 '메르시 체조'를 하는가 하면 하루 종일 빈둥빈둥 거리는 등 여느 도시인들과 다르다. 하지만 타에코는 섬 사람들에게 싫증을 느끼고 민박집을 바꾸는데…. 29일 개봉하는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의 '안경'은 여러 면에서 기존 상업영화와는 구별되는 독특한 매력을 지녔다. 감독은 일본 남부 지방의 수려한 풍광을 담백한 화면으로 잡아내 여백의 미를 살려냈다. 등장 인물도 서두르거나 재촉하는 법 없이 사색에 빠져 하루를 보낸다. 이 모든 게 익숙하지 않은 관객은 영화의 전개가 느리고 따분하게 느낄 수도 있다. 성질 급한 사람은 "다음 장면"하고 외칠지도 모를 일. 하지만 관객들은 어느새 차분한 호흡으로 화면을 응시하며 '느림의 미학'에 동참한다. 이 영화의 묘미는 여기에 있다. 부지 불식간에 슬로우 라이프에 빠져드는 것. 인간관계를 바라보는 주인공의 시선도 참신하다. 사람들은 타인의 과거를 묻지 않으며 현재 그대로의 모습을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하루나는 사쿠라의 과거를 묻는 타에코의 질문에 "안다고 해도 뭐 달라질 게 있냐?"고 반문한다. 중요한 건 그 사람의 배경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서로의 인간관계에 있다는 게 감독의 철학인 듯 하다. 사족(蛇足)-민박집 주인이 하루 세끼 푸짐하게 차려 놓는 '일본식 웰빙 식단'은 영화 관람의 눈요기 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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