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본 최고의 색채화가 마티스 이화익 “지친 하루일과 마치고 안락의자에서 쉬는듯한 편안한 마음주는 그림” 인생을 살아가면서 누구를 만나느냐가 그 사람의 인생을 풍요롭게도 하고 빈곤하게도 한다는 생각을 참 많이 한다. 필자가 마티스를 깊게 사귀게 된 것은 미술사학과 대학원 시절에 학위논문 주제로 ‘마티스 그림에 나타난 색채의 자율성: 1890-1910’을 정하고 마티스에 대한 연구를 약 2년간 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이후 언제 어디서 서정적이고 풍요로운 색채를 지닌 마티스의 그림을 대할 때 마다 마치 가족을 만난 듯 반갑고 살갑게 느껴졌다. 그래서 해외여행이나 출장 중 마티스 전시가 있으면 꼭 봐야만 직성이 풀렸다. 그를 뉴욕 현대미술관에서도 만났고 런던의 테이트미술관에서는 피카소와 비교하는 전시 때 만났다. 가장 최근에는 올해 여름 파리의 룩셈부르그 공원의 작은 미술관에서 열린 ‘편지와 엽서들을 중심으로 한 낭만적인 전시’를 보면서 그의 무궁무진한 예술세계에 다시 한 번 경탄을 했다. 필자에게 끊임없이 미술사의 호기심과 열정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마티스 그림이 드디어 국내에도 소개된다는 소식에 가슴이 떨린다. 그 동안 우리나라에 피카소에 관련된 전시는 많았지만 마티스와 관련된 전시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생각된다. 우리의 정서에도 잘 어울리는 마티스의 그림은 작가 자신이 원했듯이 ‘하루의 지친 일과를 마치고 안락한 의자에 앉아 쉬는 듯한 편안한 마음을 주는 그림‘이다. 그림이 사람들에게 위안과 평안을 줄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근사한 일인가. 세계 미술계에서 20세기의 두 거장을 꼽으라면 두말할 것도 없이 마티스와 피카소이다. 조형요소 중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요소인 색채와 형태를 대변하는 두 사람은 성장배경도 다르고 그림을 그리게 된 동기도 달랐지만 동시대에 미술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화가들로서 비교 연구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마티스는 사업가인 아버지의 뜻에 따라 법률을 공부하고 법률사무소의 서기로 일했다. 그러나 맹장염으로 병원에 입원했을 때 어머니가 건네주신 물감으로 소일 삼아 유화를 그린 경험을 계기로 화가가 천직임을 깨닫고 변호사의 길을 포기하고 화가가 되었다. 미술사에 남는 위대한 화가 중에 칸딘스키 역시 법률을 공부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마티스가 에꼴 데 보자르의 입학을 준비하기 위해 25세에 파리로 상경했으나, 데생위주의 고답적인 미술교육에 적응하지 못하고 낙방의 고배를 마셨다. 그러나 미술사에서 위대한 미술교육자로 칭송받는 구스타브 모로의 화실에 들어가 그림을 배우면서 전화위복이 되었다. 모로는 “색채는 상상을 통해 사고돼야 한다. 상상이 없다면 아름다운 색채를 결코 만들 수 없다. 영원히 남게 될 그림은 생각과 꿈 그리고 마음을 통해서 만들어진 것이지 결코 손재주만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는데, 이것이 마티스에게는 평생 지침이 되었던 것이다. 그는 초기에는 영국의 낭만주의의 대표적인 화가 터너의 작품을 연구하면서 색에 대한 열정을 키우기도 했으나, 1905년 이후 자신만의 독특한 색채의 혁명을 통해 야수파의 대표적인 화가가 된다. 연말 연초 공사다망한 중에도 마티스의 그림을 감상하며 망중한의 기쁨을 맛볼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입력시간 : 2005/11/20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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