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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사라마구’

수년 전에 감명 깊게 읽었던 소설이 한권 있다. 눈먼 자들의 도시가 이 소설의 제목이다. 작가는 포르투갈이 낳은 유일한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주제 사라마구(Jose Saramago)다. 이 책은 원인 모를 눈병으로 시민 모두가 눈먼 자로 변한 후에 펼쳐지는 세상을 실감나게 묘사했다. 아무 것도 안 보이는 암흑의 세계에서 개인의 인간성과 사회질서가 처참하게 파괴되는 모습은 참으로 충격적이었다. 그러나 소설의 내용보다 더욱 충격적이었던 것은 작가 본인의 인생역정이었다. 사라마구는 지난 1922년에 출생했다. 젊은 시절 기자생활을 하기도 했고 공장직공이나 막노동자로 생계를 꾸려가기도 했다. 또 한때에는 불법 정치활동으로 인해 국외로 강제추방 당하기까지 했다. 그런 그가 본격적인 전업작가의 길로 들어선 것은 그의 나이 57세가 되던 때였다. 그가 즐겨 다뤘던 주제는 포르투갈의 비틀린 사회현실과 종교문제였다. 신랄한 비판과 풍자로 그의 작품은 매 작품마다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그 결과 정부와 종교계의 박해가 잇달았다. 심지어는 작품의 포르투갈 국내 출판이 한때 금지되기까지도 했다. 그러나 이 같은 조국의 박해와는 반대로 외부세계는 그에게 노벨문학상의 영예를 안겨줬다. 그가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시작한 지 19년 만인 나이 76세 때의 일이다. 그는 팔순이 지난 지금까지도 오랜 기간 칩거했던 스페인령의 외딴 섬에서 집필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필자는 50대 중반이다. 그러다보니 필자의 친구 중에는 직장을 그만 둔 사람들이 적지않다. 그들을 대할 때 필자는 사라마구를 즐겨 이야기한다. 그리고 50대는 인생을 마무리하는 시기가 아니라 새 인생을 시작하는 출발점이라고 강변한다. 사실 사라마구처럼 이 시기에 인생의 금자탑을 쌓지 말란 법은 없다. 대선을 거치면서 우리사회에는 2030, 5060이 마치 유행어처럼 됐다. 여기서 2030은 진보와 개혁집단을, 5060은 보수와 수구집단을 대변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이분법에 대해 필자는 다시 사라마구를 이야기한다. 2030은 7080의 사라마구보다 과연 진보적이고 개혁적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나이로 인간의 신념을 재단할 수 있겠는가. <최병선(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원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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