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속 300㎞의 속도 혁명은 산업지도를 바꿔 놓았다. 세계 5번째로 고속철마를 풀어놓은 지 1년. 전국은 3시간 생활권으로 묶였다. 산업과 경제를 중심으로 사회 전반에도 변화가 몰려왔다. 대전이나 천안에서 서울로 출퇴근하는 ‘통근족’이 생겼다. 서울에서 KTX로 30분대로 연결되는 천안은 ‘서울시 천안구’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서울 생활권에 편입됐다. KTX가 통과하는 역은 ‘KTX 경제특구’로 통할 만큼 교통과 상권의 중심지로 떠올랐다. ◇KTX 서는 곳에 자본ㆍ인력 몰려=KTX 정차역은 배후에 신도시를 거느리게 됐다. 사람과 자본, 기술이 몰려들고 있기 때문. 전국이 3시간 생활권으로 편입된 마당에 땅값과 임대료가 비싼 서울이나 수도권을 고집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대표적인 곳은 천안아산역 배후도시인 천안 탕정지구. 지난해 4월 삼성전자 LCD 공장이 들어서면서 새로운 개념의 산업도시로 탈바꿈하고 있다. ‘당정 크리스탈 밸리’로 불리는 이 지역에는 오는 2010년까지 20조원이 투입될 전망이다. 또 수도권 공장의 이전계획이 마무리되면 협력업체 직원을 포함해 모두 10만명을 맞이하게 된다. 전북 익산의 산업단지에도 수도권 기업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 지난해 22개 기업이 1,068억원 규모의 투자계획을 세웠다. 익산시는 적어도 1,800명의 고용창출 효과를 거둘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역세권 개발로 지방분권 가속화=역세권 개발은 지방분권 시대의 새로운 화두로 등장했다. 대구시와 경북도는 고속철도 3대 역세권(김천ㆍ구미, 대구, 신경주)을 초광역 도시권의 중심지로 키울 계획이다. 특히 대구시는 동대구역 유동인구가 KTX 개통 이후 3배로 급증함에 따라 역사 인근 9만7,000평에 컨벤션센터와 업무ㆍ숙박ㆍ의료시설 등을 유치하기로 했다. 대전역의 경우 철도공사가 직접 개발에 참여해 28층짜리 쌍둥이 건물을 건립하기로 했다. 대전시는 이에 맞춰 의료산업을 특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부산시는 부산항을 국제 물류중심도시로 발전시키기 위해 철도와 해운의 국제복합 환승센터를 세우기로 했다. ◇유통ㆍ문화ㆍ관광 산업도 지각변동=역사 주변 상권도 변화의 물결에 휩싸였다. 서울역사에 자리한 롯데마트와 갤러리아백화점은 일약 전국 각지를 연결하는 ‘전국구 쇼핑몰’로 떠올랐다. 룻데마트의 한 관계자는 “고객의 40% 가량이 지방에서 찾아오고 있다”며 “마일리지회원 중 10%는 주소지가 부산일 정도로 고객이 전국에 고르게 분포돼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문을 연 용산역 스페이스9은 새로운 도시공간의 전형을 보여줬다. 할인마트, 전자전문상가, 의류아울렛, 식당가, 복합영화관 등이 한데 모여 ‘올라운드 쇼핑문화공간’을 연출하면서 거대한 상권을 형성하고 있다. 문화ㆍ관광 산업에도 KTX의 파급효과는 막대하다. KTX 개통 이후 연계 관광상품만 80개나 신설됐을 정도다. 철도공사의 한 관계자는 “한류 열풍을 타고 입국한 일본 대만 등 해외 관광객들이 KTX로 부산과 목포 등을 다녀오는 것이 필수 코스가 됐다”며 “KTX가 역동적인 한국을 알리는데도 일조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철의 실크로드’ 현실화 앞당겨=KTX는 ‘철의 실크로드’를 보다 현실화했다. 올해 안에 성사될 것으로 예상되는 남북철도연결사업이 KTX의 영역을 멀지 않은 미래에 중국과 러시아, 유럽 등지로 넓혀주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여기에 한일 해저터널 건설과 KTX와 일본 신칸센을 연결하는 프로젝트가 본격 추진되면 한국ㆍ일본ㆍ중국ㆍ러시아ㆍ유럽연합을 잇는 ‘철의 실크로드’가 현실화되는 것이다. 이천세 철도공사 고속사업단장은 “KTX는 앞으로도 기업도시 건설 등 지역경제 활성화와 산업시설의 탈(脫)수도권화를 촉진함으로써 국토의 균형발전에 새로운 동력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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