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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인웨어를 키우자] 3.교육의 질이 갈수록 떨어진다
입력2004-02-24 00:00:00
수정
2004.02.24 00:00:00
국내 이공계 인력(학사 기준)은 일단 양적인 측면에서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지난 2002년 국내 공대 학사 졸업생은 6만5,000여명에 달했다. 이는 미국(6만명)보다도 5,000명이나 많은 것이다. 이는 지난 80년대 후반부터 지방대를 중심으로 이공계 정원이 크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지난 87년만해도 이공계 졸업자는 2만7,000여명에 불과했지만 무려 2.4배나 늘었다. 정부는 지방대들이 다른 단과대 정원을 늘리기 앞서 공대 정원을 반드시 늘리도록 유도했다.
양적 팽창과는 달리 질은 오히려 떨어졌다는 게 일반적 평가다. 더욱이 의대, 약대 등 평생이 보장되는 분야로 학생들이 몰리면서 이공계 기피현상은 심화되고 있다. 수능 1등급 학생들의 이공계 진학비율은 지난 98년까지만 해도 28%에 달했지만 지난 2001년부터는 20%선 밑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우수한 학생이 몰리지 않아 이공계 교육의 질이 떨어지는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국책연구기관의 한 관계자는 “수능성적이 높다는 것이 곧 과학기술인력으로서의 자격요건이라고 볼 수는 없다”라며 “대학은 이공계 기피현상을 개탄하기 앞서 얼마나 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해 노력했는 지 반성해야 한다”고 잘라 말했다.
◇학부제가 이공계 대학의 전문성 떨어뜨려=우수한 학생의 공대 진학비율이 떨어진다고 해도 대학에서 보다 강도 높은 교육이 이뤄지면 경쟁력이 높은 과학기술인력을 키워낼 수 있다.
하지만 현행 교육제도아래서는 질 높은 교육을 시행하기 어렵다. 가장 큰 걸림돌은 학부제다. 지난 97년부터 학생들에게 다양한 지식을 취득할 수 있도록 학과목에 대한 선택권을 부여한다는 취지로 학부제가 도입됐다. 전공 과목에 대한 깊이 있는 교육 및 연구는 학부가 아닌 대학원 과정에서 이뤄질 수 있다는 논리가 동원됐다.
학부제가 도입되면서 이공계 교육의 질이 떨어졌다는 게 일반적 평가다. 의대, 약대 등은 전문성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학부제 대상에서 제외됐다. 하지만 이공계는 학부제가 시행되면서 최소 전공 이수학점이 보통 60~70학점 내외에서 36학점으로 줄었다. 전공 이수학점이 줄어 한학기에 전공을 한 과목만 들어도 졸업하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다. 더욱이 전공 필수는 아예 없어졌고, 모든 과목이 선택이다. 어차피 기업이 영어나 학점 평점을 보고 대졸 신입사원을 뽑다 보니 난이도가 높은 과목은 철저한 기피 대상이다. 정진화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학부제는 당초 석ㆍ박사 등 고급인력을 키우기 위한 것이었으나 그 취지를 살리지 못한 채 학부 교육의 질을 떨어뜨리는 부작용을 가져왔다”고 지적했다.
◇국내대학, 교육보다는 연구가 우선=학부제라는 시스템적인 장애 요인도 무시할 수 없지만 대학 스스로 보다 나은 교육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국내에서는 서울대를 비롯한 주요 대학뿐 아니라 거의 모든 공과대학들이 연구중심 대학을 지향한다. 연구중심 대학이란 박사 후(post-doc)과정 이수자가 박사과정 이수자보다 많은 곳으로 그야말로 `연구`로 승부하는 대학이다. 특히 정부가 BK21(Brain Korea) 등 각종 프로그램을 통해 연구역량 강화를 강조함에 따라 각 대학은 너나 할 것 없이 연구중심 대학을 목표로 삼는다.
윤우영 고려대 공대 교수는 “연구중심 대학은 1류, 산업체의 수요에 맞춰 학생들을 교육하는 `교육중심 대학`은 3류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다”면서 “거의 모든 대학에서 체면 때문에 교육보다는 연구를 중시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국내 이공계 대학에서는 강의를 열심히 하는 교수는 바보 취급을 당하기 쉽다. 특히 대학 및 교수 평가는 논문 수로 결정된다. 논문 수가 많으면 보다 좋은 평가를 얻어 지원예산 등 여러 면에서 혜택을 누릴 수 있다. 강의에 보다 많은 시간을 할애하면 연구시간은 줄어들고 논문 작성도 위축된다. 더욱이 아무리 강의를 잘하거나 열심히 해도 반대급부는 없다. 연구에 비해 강의를 게을리할 수 밖에 없는 시스템이다.
석영철 산업기술재단 정책연구센터장은 “이공계 교육의 질을 높이려면 교수를 연구성과뿐 아니라 강의를 잣대로 평가하는 시스템을 도입하고, 강의전담 교수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공대 간다"는 부모 협박용?
`에이! 나, 공대(工大) 갈거야`
이공계 기피현상이 장기화되면서 과학기술 전문인력 사이에서는 이런 우스개 소리가 회자되고 있다. 흔히 고3 수험생들이 부모에게 투정을 부릴 때 `공대로 진학하겠다`는 것을 협박(?)용으로 자주 쓴다는 얘기다. 삼성전자 등 일부 대기업을 제외하고는 이공계 출신들이 상대적으로 푸대접을 받는 탓에 자기 자식만은 공대로 가지 않기를 바라는 보편적인 인식을 보여준다.
줄기세포 연구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황우석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나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을 흔히 `이공계 스타`로 내세운다. 하지만 이런 모델 제시는 이공계 기피현상을 해소하는데 큰 도움을 주지 못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프로 스포츠 등 다른 분야에서도 스타는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회 전반에 걸쳐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것이 정공법으로 지적된다. 이공계 관계자들은 장학금 지원 등 이벤트성 대책이 아니라 사회 시스템을 통해 우수한 과학기술인재를 우대하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입시위주 반복ㆍ주입 초중고 교육도 문제
이공계 대학교수들은 `이공계 위기론`에 대해 반성과 함께 분통을 터뜨린다. 이공계 교육의 질이 떨어진 데는 대학의 책임도 크지만 대학 스스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사실 최근의 이공계 위기는 대학만이 변한다고 해서 해결될 일은 아니다. 사회 전체적으로 공대보다는 의대 및 약대를 선호하는 현상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데다 학생 선발에서부터 교육에 이르기까지 대학의 재량권은 지극히 제한돼 있다.
특히 최근의 이공계 기피현상은 브레인웨어 육성기반을 뿌리째 흔들어 놓을 수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2000년 발표한 국제학력조사에 따르면 전체 5개 등급 가운데 상위 1등급 학생의 비중은 한국의 경우 5.7%로 OECD 평균치 9.5%에 비해 4%포인트나 떨어졌다. 반면 일본은 1등급 학생의 비중이 9.9%, 핀란드는 무려 18.5%에 달했다.
이처럼 대학 진학을 앞둔 우수 인재들의 비중이 선진국보다 떨어지는 상황에서 이공계 기피현상이 계속될 경우 고급 과학기술인력 육성은 구호로 그칠 수 밖에 없다. 손욱 삼성인력개발원장은 “극소수의 고급 두뇌가 이공계로 진학하더라도 이공계 기피의 부작용으로 평범한 학생들이 우수 인재와 함께 섞이게 되면 경쟁의 필요성도 그만큼 떨어지면서 `하향 평준화 현상`이 심화될 수 도 있다”고 말했다.
◇중ㆍ고교 교육의 질이 떨어지면 대학교육의 질도 하락=지난해 서울의 한 공과대학 교수들은 강남 학원의 수업을 참관했다. 학교보다 우수한 것으로 알려진 교수법과 함께 학생들의 수준을 파악하려는 목적이었다. 교수들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강남 최고의 수학학원에서 강사들은 학생들에게 똑 같은 문제를 4, 5차례나 반복해서 풀도록 유도했다. 이는 현행 대학 수학능력시험이 보다 더 많이, 보다 더 깊이 알고 있는 가를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틀리지 않느냐를 평가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다 깊이 있는 지식을 가르치기 보다는 단순한 지식을 반복, 주입하는 게 일반적인 고등학교 교육이다.
한민구 서울공대 학장은 “2004년 대학 수능시험의 경우 수학 만점자가 무려 7,700명에 달할 정도로 변별력이 떨어진다”면서 “정부의 방침대로 내신성적만을 기준으로 학생을 선발하면 수학만으로 평가한다고 해도 과학고 출신 등 우수 인력을 뽑을 수 없다”고 말했다.
김창경 한양공대 교수는 “올해 고3 수험생들이 내년에 대학에 입학하면 대학에서 코사인 등 기초적인 삼각함수를 가르쳐야 하는 경우도 빚어질 수 있다”면서 “이렇게 고등학교 교육의 질이 떨어지면 대학교육의 질도 하락할 수 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어릴 때부터 과학교육으로 흥미 북돋워야=최근의 이공계 기피, 나아가 브레인웨어 육성기반위축은 당분간 해소되기 어려울 것으로 지적된다. 따라서 이공계 학생에 대한 장학금 지원확대 등 단기적 대책과 함께 중장기적인 대책이 필요한 것으로 지적된다.
과학기술 전문가들은 과학기술 교육을 어릴 때부터 대중화시키는 것이 효과적인 방안이라고 권고한다. 민동준 연세대 공대 교수는 “지금의 젊은이들은 개인의 호(好)ㆍ불호(不好)에 따라 자신의 인생을 설계하는 경향이 짙다”면서 “초등학교 때부터 쉽게 과학기술을 접해 흥미와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교육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삼성종합기술원은 용인에 있는 17개 초등학교를 대상으로 어린이과학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이 어린이과학교실은 초등학생은 물론 학부모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생활 주변에서 사례를 찾아 보다 쉽게 과학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돕기 때문이다. 손욱 원장은 “연구소 정년 퇴직자들을 초등 또는 중등학교의 과학교사로 활용해 과학문화를 확산시키면 어릴 때부터 과학영재를 발굴, 육성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경제신문ㆍ산업기술재단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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