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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TV채널이 3~4개뿐이었어도 온 가족이 둘러 앉아 재미있게 시청했었다. 하지만 요즘은 케이블 방송을 포함해 수 백 개의 채널들이 대기하고 있지만 별로 특별하게 느껴지지도 않으며 수시로 리모컨을 돌려가며 다른 프로그램을 확인한다."
"온갖 음식점이 모여 있는 식당 가에서는 맛있는 음식을 선택하는 즐거움보다는 오히려 어떤 곳을 정하여 들어가야 할 지 쉽게 정할 수가 없어 매우 당황스럽다."
이러한 경험을 누구나 몇 번씩은 겪어 봤을 것이다. 이렇게 선택이 가능한 대안이 많으면 만족도가 높아질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예상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도리어 선택이 당황스럽거나 심지어 피곤하게 느껴지는 경험들이 있다. 미국 컬럼비아 대학에서 이 선택에 관련한 재미있는 실험을 했었다. 마트에서 6종류의 잼이 진열된 시식코너와 24종류의 잼이 진열된 시식코너를 운영하면서 구매율을 조사해 본 것이다. 해당 실험의 조사결과, 6종류의 잼이 진열된 코너에서는 실제 구매율이 30%로 나타났는데, 24종류가 진열된 코너의 구매율은 고작 3% 정도에 그친 것이다. 선택의 폭이 4배나 높았음에도 구매율이 훨씬 더 낮게 나타난 것이다. 이렇듯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의 종류가 늘어갈수록 일정 정도까지는 만족도가 비례하여 늘어나긴 하지만, 어느 정도 수준이 넘어가게 되면 오히려 점차 감소하는 현상이 나타나는데 이를 '무지개 현상'이라고 부른다.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이 일정수준 이상을 넘어서 너무 많아지게 되면 도리어 만족도가 떨어지고 혼란이 생긴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무지개 현상이 우리의 노후준비에는 어떻게 작용할까. 우리는 직장생활을 통해 많은 업무를 완수하기 위해, 또 수 많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숨 돌릴 틈도 없이 바쁘게 지낸다. 그리고 가정에 필요한 것들을 얻고, 아이들을 한 성인으로 키우기 위해 애썼던 많은 시간들을 보내고 있다. 그러나 이런 바쁜 시간들이 지나고 나이가 들어 그런 과업들이 정리되는 시기가 되면 갑작스레 다가온 것처럼 느껴지는 시간의 공백 앞에 서게 될 것이며, 그 동안은 할 수 없었던 많은 일들에 대해 무엇이나 언제든지 할 수 있는 수 많은 선택의 순간을 만나게 될 것이다. 바로 눈 앞에 다가온 노후의 시간에 당신은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풍요롭고 행복한 노후생활을 위해서는 우리에게 돈과 같은 재무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건강, 관계, 여가 등 여러 분야에서의 폭 넓은 준비가 필요하다고 많은 사람들이 주장한다. 물론 이 모두가 매우 중요하고 또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그러한 준비들이 더 효과적이고 의미 있는 것이 되기 위해서 반드시 그에 앞서 선행되어야 할 것은 노후에 대한 나의 선택지를 어느 정도는 미리 좁혀 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 노후생활의 시작을 앞에 두고 새로운 모든 것을 탐색하거나 시도해 보기에는 부담스러운 부분이 많다. 따라서, 나의 노후생활 기간을 통해 진정으로 하고 싶고 삶의 의미가 부여되는 영역이 무엇인지를 미리 탐색하고 찾아 두는 것이 바람직한 것이다.
새로운 일자리에서 일을 하고, 멋진 곳으로 여행을 다니고, 여가생활도 즐기며, 못 다한 학습과 자기계발도 하고, 어려운 이웃이나 사회를 위해 봉사하는 것과 같은 모든 일들이 한꺼번에 이루어 질 수는 없을 것이다. 나의 노후를 위한 바람직한 나의 미래상과 목표를 선택하고, 그 속에서 자신이 생각하는 우선순위를 정해 두는 것이 많은 선택의 대안 앞에서 혼란스러워 하기 전에 가장 먼저 해야 할 노후준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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