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자동차는 기름이 아니라 소프트웨어로 달린다"
다임러 AG 이사회 의장이며 메르세데스-벤츠 자동차그룹의 수장인 디터 제체 회장이 올해 초 열린 세계 최대 가전전시회 'CES 2014'에서 던진 화두다. 소프트웨어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로 막이 오른 플랫폼 전쟁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플랫폼을 만들고 작동시키는 것이 바로 소프트웨어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플랫폼을 장악한 애플은 삼성전자 보다 세계 시장 점유율이 2배 이상 적지만 매출은 훨씬 높다. 지난해 휴대폰 시장에서 기업들이 벌어들인 수익의 60% 이상은 애플이 챙겨갈 정도다.
업계 관계자는 "아이폰이라는 휴대폰을 잘 만드는 것도 있지만 자체 운용체제(OS)인 iOS 같은 소프트웨어 기술력을 바탕으로 휴대폰 시장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김기찬 카톨릭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기술의 진보에 따라 하드웨어의 가치를 높여주는 소프트웨어의 중요성이 부각 되고 있다"며 "삼성전자가 최근 향후 5년 동안 1,700억원을 투자해 5만 명의 소프트웨어 인력을 양성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것은 하드웨어가 아닌 소프트웨어 기업으로 거듭나기 위한 행보로 보인다"고 말했다.
◇플랫폼전쟁 키워드는 소프트웨어= 플랫폼은 미래 IT산업을 대변하는 키워드로 부상했다. 전 세계 굴지의 IT 기업들이 독자적으로 강력한 플랫폼 구축에 나서는 등 제2차 플랫폼 전쟁이 촉발된 이유기도 하다. 중요한 것은 플랫폼 시장 선점의 근간에는 소프트웨어가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이다. 플랫폼 시장을 장악하려면 소프트웨어 경쟁력을 반드시 끌어 올려야 하는 것이다.
정보기술(ICT) 산업 구조는 '언어'와 같은 운영체제(OS)와 그 위에 있는 미들웨어· 콘텐츠 그리고 이를 기계에서 구현해주는 하드웨어 등 3단계로 구성된다. 하드웨어보다 소프트웨어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실제 애플은 OS(iOS)와 미들웨어, 콘텐츠, 하드웨어까지 완벽하게 갖춘 유일한 회사다. 구글은 OS(안드로이드)와 서비스(검색, 지도, 구글플러스 등)를 갖추고 있지만 하드웨어가 없다. 그래서 모토로라를 인수한 것이다. MS도 OS(윈도)와 서비스를 보유하고 있지만 하드웨어를 갖추지 못해 최근 노키아를 인수하기도 했다.
이 같은 변화의 흐름에 발맞춰 삼성전자 역시 하드웨어 제조업체로는 처음으로 지난해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대규모 삼성개발자콘퍼런스(SDC)를 개최했다. 소프트웨어 사업 강화를 대외적으로 선포한 것이다. 홍원표 삼성전자 미디어솔루션센터(MSC) 사장은 "갤럭시 스마트폰과 태블릿 PC는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가 결합된 정수"라며 "삼성은 앞으로 소프트웨어 중심 회사가 될 것이다"고 강조했다.
◇소프트웨어로 옷 갈아 입는 IT 기업들=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회사는 처음부터 소프트웨어 기술력으로 승부, 현재에 이른 경우다. 최근 이들 업체는 탄탄한 소프트웨어 경쟁력을 바탕으로 하드웨어와 클라우드까지 사업 영역을 넓히고 있다.
IBM과 델, HP 같은 전통적인 하드웨어 업체들 역시 소프트웨어와 서비스 업체로 변신하고 있다. 이들은 과거 메인프레임과 서버, PC 시장의 대표 업체였지만 최근에는 공격적인 인수합병을 통해 서비스 업체, 엔드투엔드 솔루션 업체로 탈바꿈 중이다. 즉 하드웨어 중심이던 ICT 산업이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급속히 새로 짜이고 있는 셈이다.
예를 들어 보자. 자동차 개발비의 절반인 52.4%가 차량 전자제어 등 소프트웨어 관련 비용이다. 자동차 1대를 만들 때 3,000억 원이 들었다면 이 중 1,500억원 이상이 소프트웨어 관련 비용이다. 가전제품 개발 원가의 53.7%, 산업 자동화 분야의 51.5%, 통신 산업의 52.7%도 소프트웨어 비용이다.
전길남 카이스트 명예교수는 "모든 산업 분야에 IT 기술이 폭넓게 접목되고 있는 최근의 추세를 보면 제품 개발과 생산, 판매 등 기업 활동 전반에 걸쳐 소프트웨어가 차지하는 비중과 중요성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며 "글로벌 IT 업체들이 소프트웨어 시장 선점을 위한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경쟁력의 원천은 소프트웨어 = 휴대폰의 경우 애플의 아이폰이 등장한 이후 하드웨어 성능보다 기능 혹은 사용자 경험을 제공하는 소프트웨어에 따라 제품의 성공 여부가 결정되는 추세다. 널리 알려진 것처럼 휴대폰 부문에서 하드웨어 경쟁은 이미 한계에 다다랐다.
대신 이제는 직관적인 사용자 인터페이스와 사용할 수 있는 모바일 앱의 종류, 안정적인 서비스 등 소프트웨어가 구입 할 휴대폰을 결정하는 핵심 요인이다. 이외에 자동차의 인포테이먼트 시스템, 가정의 홈 오토메이션 시스템, 건물의 스마트빌딩 시스템 등 거의 모든 영역에서 하드웨어 기술보다는 소프트웨어 기술력에 의해 차별화되고 또 소비자의 선택이 결정된다. 이러한 흐름의 정점은 이른바 'SDx(Software Defined x)'로 불리는 것이다. 서버와 스토리지, 네트워크 등 IT 인프라 요소의 '소프트웨어화'를 의미한다.
이준정 미래탐험연구소 대표는 "미국이 IT 강국으로 자리매김 할 수 이유는 세계 소프트웨어 시장의 42.4%를 차지하며 소프트웨어 강국으로써의 면모를 과시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이는 하드웨어가 아닌 소프트웨어의 기술력이 글로벌 IT 시장을 선점할 수 있는 차별화라는 것을 일찌감치 간파하고 정부 차원의 투자를 아끼지 않은 결과"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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