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 허위 공장을 만드는가 하면 만기 대출을 갚기 위해 위장 수출입을 반복했다. 수출 규모를 부풀리기 위해 8,000원짜리 제품을 250만원짜리로 둔갑시키고 가짜 수출을 담보로 대출받은 자금은 홍콩 페이퍼컴퍼니 계좌로 빼돌리기도 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사기에서 출발해서 사기로 끝났다.
관세청 서울본부세관은 3조원대의 제품을 허위수출한 혐의(관세법 위반) 등으로 가전업체 모뉴엘의 박홍석(52) 대표 등 3명을 구속했다고 31일 밝혔다.
또 이에 가담한 모뉴엘 자금팀장 등 13명을 같은 혐의로 불구속 입건해 조사하고 있다.
사기 금액은 당초 알려진 1조2,000억원 보다 3배 가까이 많은 3조원2,000억원에 달했다.
서울세관에 따르면 박 대표 등은 2009년 1월부터 지난 7월까지 3,330차례에 걸쳐 홈씨어터(HT) PC 120만대를 3조2,000억원 상당의 정상제품 것처럼 위장해 수출하고 이 과정에서 446억원의 재산을 해외로 빼돌린 혐의를 받고 있다.
조사결과 박씨는 2007년 HT PC로 재고가 쌓여 자금난에 몰리자 수출가격과 실적을 고의로 조작해 사기대출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그는 대당 8,000∼2만원인 HT PC를 120배인 미화 2,350달러(250만원 상당)으로 속여 서류를 꾸민 후 은행에 허위수출 채권을 매각해 자금을 유용했다. 이후 150∼180일의 대출만기가 도래하면 다시 위장 수출입을 반복했다.
또 실제의 가공공장이 있는 것처럼 홍콩에 100만달러(약 10억5,000만원)를 투입해 창고와 위장조립공장을 마련하고, 실물 이동 없이 허위 수출입을 반복하기도 했다.
모뉴엘의 자회사인 잘만테크도 2012년 3월 중순부터 지난 6월 중순까지 76차례에 걸쳐 홍콩에서 이런 허위수출로 미화 8,800만달러(약 927억7,000만원)를 위장수출한 사실도 적발됐다.
잘만테크는 코스닥 상장기업으로, 모뉴엘 박 대표가 전체 지분의 64%를 가진 대주주다. 잘만테크의 대표는 박 대표의 동생인 박민석씨다.
모뉴엘은 이런 수법으로 외환은행 등 10여개 은행에서 대출을 받은 후 아직까지 6,745억원을 상환하지 않고 있다.
박 대표는 국내 은행으로부터 대출받은 자금을 자신이 관리하는 홍콩 페이퍼컴퍼니 계좌에 송금하고, 이 가운데 446억원을 빼돌려 브로커 로비자금, 주택구매 등에 사용한 사실도 드러났다.
그는 개인 비자금 목적으로 국내 다른 업체에서 자신이 운영하는 해외 페어퍼컴퍼니에 물품을 수출하는 것처럼 위장, 수출대금을 받는 방식으로 120억원 상당의 자금을 세탁해 국내에 반입하기도 했다.
박씨는 이 자금을 국내외 카지노에서의 도박 자금과 제주도 개인별장 구매, 연예기획사 투자, 개인채무변제 등에 사용했다.
한성일 서울세관 조사국장은 “허위수출 대부분을 해외에서 발생시켜 당국의 감시망을 피했고, 홍콩에 위장조립공장을 만들어 회계감사나 은행의 실사에 대비해 일련의 범죄가 장기간 적발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또 “1.5∼10%에 이르는 과도한 커미션을 브로커에게 지급하는 방법으로 대외 신뢰도가 높은 해외 대기업과 거래했다”며 “국내 금융기관이 외형적 실적에 의한 여신한도 부여나 수출채권 서류의 세밀한 검토도 미흡했다”고 덧붙였다.
관세청은 사건을 마무리 짓고 내주 말 사건을 검찰로 송치할 계획이다. 검찰이 정식으로 수사에 착수하면 박씨의 배임, 횡령, 뇌물수수 등 구체적인 혐의가 드러날 것으로 예상된다.
모뉴엘은 로봇청소기와 홈시어터 PC 등으로 급성장한 가전업체로, 혁신업체로 주목받다가 최근 돌연 법정관리를 신청해 파문을 일으킨 바 있다.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 빌 게이츠가 2007년 세계가전박람회(CES) 기조연설에서 주목할 회사로 지목해 지명도를 높이기도 했다.
/디지털미디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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