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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생전'의 교훈
입력2002-11-24 00:00:00
수정
2002.11.24 00:00:00
'허생전'은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에 들어 있는 소설이다. 허생은 가난한 남산골 선비였다. 10년을 작정하고 글공부를 하던 허생은 가난에 지친 마누라의 바가지에 못 이겨 책을 덮고 거리로 나선다.
상인들이 몰려 있는 운종가에 내려가 사람들에게 서울에서 으뜸가는 부자가 누구냐고 묻는다. 사람들이 변승업이라고 알려주자 그는 변승업을 찾아간다. 그리고 다짜고짜 돈 1만냥을 빌려달라고 한다.
당대 제일의 부호답게 변승업은 통이 큰 사람인지라 처음 보는 허생에게 거금 1만냥을 선뜻 빌려준다. 허생은 그 돈을 가지고 안성으로 내려간다.
2ㆍ7일장인 안성 5일장은 전국의 보부상과 삼남지방의 온갖 물화가 모이던 이름난 향시였다. 특히 농산물과 청과물의 집산지로 이름이 높았으며 개성ㆍ수원과 더불어 조선의 3대 시장으로 꼽히기도 했다.
그런 까닭에 천자문 뒤풀이에도 '이틀 이레 안성장에 8도 화물 벌 열(列)'이란 대목이 나오고 또 '안성장은 동대문시장ㆍ남대문시장보다 두가지가 더 있다'고도 했는데 그 두가지는 농기구인 써레와 도작용 모라고 전해온다.
어쨌든 이 안성장에 내려가 자리잡은 허생은 삼남에서 올라오는 배ㆍ곶감ㆍ대추ㆍ밤 같은 과일들을 매점한다. 이렇게 하여 과일의 유통경로가 마비되자 한양의 장터는 과물을 구하려는 상인과 수요자들의 아우성으로 온통 떠나갈 지경이 되고 만다.
조상의 제삿상에 올려야겠는데 과물을 구할 수 없으니 값은 마구 뛸 수밖에. 원가의 10배로 팔아넘긴 허생은 떼돈을 번다.
그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이번에는 제주도로 건너가 갓과 망건의 재료인 말총을 매점한다. 이것 또한 큰돈을 긁어모은다.
이처럼 수요와 공급의 유통질서를 독점으로 마비시켜 폭리를 남긴 허생은 이렇게 말한다. "이 방법은 백성에게 도둑질을 하는 것과 같다. 후세에 누군가가 이 방법을 다시 쓰면 반드시 나라를 병들게 하리라."
요즘 세상에 '허생전'을 읽고 이 같은 허생의 경고를 교훈으로 마음 속에 아로 새긴 상인ㆍ기업가가 몇이나 되는지는 알 수 없다.
지난 17일 별세한 조중훈 회장이 생전에 모은 재산 1,000억원을 공익재단과 그룹 계열사에 기증했다고 한다. 한진그룹의 창업주 조 회장도 무상한 세월의 흐름에 따라 이승살이의 한 삶을 마치고 저세상으로 돌아간 것이다.
한국재벌에 대한 평가는 공과(功過)의 명암이 엇갈리지만 조 회장이 마지막 길을 가며 재산을 사회에 환원한 사실은 모든 부자, 특히 졸부들이 꼭 본받을 만한 일이라 하겠다.
황원갑<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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