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이란 제재에 대해 미국은 물론 이해 당사국인 이란과도 협의를 하겠다고 나선 것은 미국과 이란 모두를 자극하지 않기 위한 고육책이다.
협의를 통해 시간을 벌면서 한국외교의 중심축인 한미동맹을 최대한 존중하는 동시에 제재 조치로 이란과의 교역에서 발생할 수 있는 피해를 최소화한다는 묘수를 찾겠다는 것이다. 이란 제재를 놓고 일종의 줄타기가 시작된 셈이다.
그러나 정부가 시간 끌기 식 외교전략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기업들의 피해가 더욱 커질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이미 국내 은행들은 지난달 8일까지 계약이 이뤄진 수출입거래까지만 허용해주고 이후 발생한 이란 관련 수출입거래를 전면 중단한 상태에 따라 대금결제 등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고 있다. 20일 경제금융점검회의 이후 정부 고위관계자도 이 문제를 지적하면서 해법에 대해서는 "미국의 제재 시행령에 따라 은행들이 (소비재 등 제품에 따라) 자체적으로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주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사실상 이란과의 거래는 이미 중단됐다.
한국의 이란 제재 키포인트는 멜라트은행 서울지점에 대한 제재 조치. 미국은 수차례 우리 측에 멜라트은행 서울지점에 대한 자산동결을 요청해왔다. 또 오는 10월로 예정됐던 대이란 제재법 시행명령을 한 달 반이나 앞당긴 16일 관보에 게재하는 등 속도를 높이고 있다.
이러한 미국의 발 빠른 대응에 우리 정부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난감한 상황이다.
정부 내에서도 제재 수위를 놓고 부처별로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외교 라인에서는 제재수위가 낮을 경우 북핵과 이란 핵에 대한 이중잣대로 보일 수 있다는 점인 데 반해 경제 라인은 이란의 보복조치시 원유수급 차질과 대이란 수출 기업의 타격을 들어 난색을 표시하고 있다. 실제 이란은 2005년 국제원자력기구(IAEA) 이사회의 이란 핵 관련 결의안 표결시 찬성국 22개국 중 한국과 영국ㆍ체코ㆍ아르헨티나 등 4개국에 대해서만 수출금지조치를 취하는 등 한국의 태도에 민감한 반응을 보여왔다.
정부는 일단 자산동결은 국내 은행법에 없는 규정이라는 점을 들어 미국 측에 난색을 표시하는 한편 안으로는 금감원을 통한 멜라트은행의 검사에서 제재 조치를 가할 수 있는 위계행위를 찾고 있다. 현 상황에서는 9월 초 제재심의위원회를 통해 한국은행 총재의 허가 없이 이란 내 금융제재 대상자와 여러 차례 거래를 한 정황을 들어 영업정지 조치를 내릴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이러한 우리 측의 제재를 '자산동결'이라는 강수를 요구하는 미국과 원유 및 교역 카드를 들고 버티는 이란 측을 어떻게 설득하냐는 것이다. 긴급경제금융점검회의 이후 정부 고위 관계자가 "이란 제재 여부와 수위에 대한 각종 억측이 미국이나 이란과의 협상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면서 "이 문제는 양국과 협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힌 점도 이런 고민을 보여준다.
정부는 늦어도 다음주 초 외교 채널을 총 동원해 미국ㆍ이란과 협의에 들어간다. 협의 과정에서 한국이 처한 상황을 미국과 이란에 각각 이해를 부탁하고 설득하는 데 초점을 맞출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외교전의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미국 측이 우리의 아킬레스건이 천안함 사건 등에 대한 공조를 강조할 경우 미국 측 요구를 무시할 수 없는데다 이란 측도 원유수입 등을 무기로 들고 나올 경우 정부로서는 난감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실제 이란은 17일 중앙은행 부총재를 한국으로 보내 기획재정부ㆍ한국은행 관계자들을 만나는 등 외교전을 펼치고 있다. 정부 당국자의 표현대로 솔로몬의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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