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가 국민투표를 통해 채권단의 제의를 거부하면서 그렉시트(그리스의 유로존 탈퇴·Grexit)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논리적으로는 그렉시트는 그리스와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국가 모두에게 좋은 것처럼 보인다. 그리스의 경제력이나 유로존 국가들의 구성 면면을 보면, 그리스가 가입돼 있다는 점이 다소 의외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그리스는 유로존에 잔류할 가능성이 높다.
우선 그리스는 시리자 정권이 들어오기 전까지 채권단의 요구사항을 어느 정도 충실히 수행해왔다. 그 과정에서 최근 5년간 국내총생산(GDP)이 25%나 줄었고 전체실업률은 25%, 청년실업률은 50%에 육박하게 됐다. 채권단은 그리스에 지나치게 짧은 시간 동안 긴축 달성을 요구했다. 그리스의 급진좌파 정당인 시리자 정권이 들어서고 불과 6개월이 지났다. 지금까지 긴축 정책을 실시했는데 정권이 바뀌면서 이를 문제 삼는다고 유로존 회원 자격을 박탈하겠다는 것은 성급한 처사다.
두 번째로 유로화라는 단일통화 제도는 경제력 차이가 큰 나라들이 회원국일 경우 구조적 결함이 나타나게 된다. 경쟁력이 강한 국가의 통화는 저평가되고 경쟁력이 약한 국가는 고평가된다. 여기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없애기 위해서는 각국이 경제력을 비슷하게 가져가는 것 이외에 유로본드나 예금보험 기관처럼 리스크를 분담할 체계가 갖춰져야 한다. 연방제 국가인 미국을 봐도 각 주(州)의 경쟁력이 비슷하지 않다. 하물며 유럽처럼 개별 주권을 가진 국가들이 경쟁력이나 경제구조를 단기간에 비슷한 수준으로 만들기는 쉽지 않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세 번째로 그리스가 유로존에서 차지하는 비경제적 가치가 크다. 우선 유럽연합(EU)을 탈퇴하려는 영국이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영국까지 EU에서 빠지는 것은 의미가 남다르다. 게다가 지정학적으로도 그리스는 터키·불가리아·알바니아와 국경선을 맞대고 있다. 중동과도 가깝다. 미국이 유럽 국가들에 대해 타협을 종용하는 것도 그리스가 갖는 지정학적 가치를 알기 때문이다.
유럽연합은 아직 그리스를 떨쳐버릴 수 없는 상황이다. 다만 그리스의 요구에 굴복하면 스페인·이탈리아·포르투갈도 그리스의 뒤를 따를 수 있기 때문에 '반항'에 대한 어느 정도의 제재는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리스도 유로존 탈퇴 이후의 불확실성과 그동안 긴축 노력을 해왔던 것을 감안하면 그렉시트를 쉽게 택할 수 없다. 그리스가 처음부터 유로존에 속하지 않았으면 모랄까, 현재처럼 깊이 관여된 상황에서 탈퇴를 하는 것은 실질적인 어려움이 따른다. 바둑에서 수순이 중요하듯 이미 바둑판 위에 올려진 그리스라는 바둑돌을 치우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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