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에서는 상장지수펀드(ETF)의 인기가 상당히 높다. 우리나라에서는 대부분 시장지수 관련 ETF의 수동적인 운용 행태, 낮은 수수료 등의 특징에 집착하는 탓에 인기가 낮다. 당연히 성장도 제한적이다. 사실 ETF는 기존에 알려진 특징과는 다르게 상당한 잠재성을 갖고 있다. 이를 충분히 활용해야 한다. 특히 고령화 사회를 떠받치고 있는 연금과 잘 연계할 필요가 있다.
우선 ETF는 시장지수와 관련된 상품이라는 고정관념을 버려야 한다. 많은 투자자들은 대부분 지수를 추종하거나 지수 수익률과 반대로 가는 ETF 등을 생각한다. ETF는 섹터뿐만 아니라 투자 주제에 따라 다양하게 만들 수 있다. 헬스케어 ETF 또는 중국 소비 테마 ETF가 대표적인 예다. 지난 1년간 수익률을 보면 지수를 추종하는 것은 거의 없지만 헬스케어를 따르는 ETF는 약 110% 수익률을 보이고 있다.
두 번째로 ETF가 수동적이라는 것의 명확한 의미를 알아야 한다. 이는 ETF의 운용을 매니저가 임의로 하지 않고 정해진 가이드라인 내에서 한다는 뜻이다. 이런 면을 제외한다면 ETF는 창의적이면서도 적극적인 상품이다. 변동성이 낮은 주식을 위주로 ETF를 구성할 수 있고 중국 소비재 테마처럼 장기 투자 아이디어에 따라 다양한 상품으로 만드는 것이 가능하다.
세 번째로 ETF를 개별상품으로 보지 말고 묶어서 자산배분으로 운용하는 수단으로 생각해야 한다. 세계적으로 상장돼 있는 ETF는 3,700개가 넘고 국내에서도 177개가 상장돼 있다. 이들을 묶어서 고객의 선호에 따라 충분히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값싼 비용으로 만들 수 있다. 포트폴리오를 단순히 고위험·중위험·저위험이 아니라 고객의 선호에 맞추어 수백 가지를 만들 수 있는 게 ETF다. 거래 유연성이 있으므로 리밸런싱을 충분히 활용할 수도 있다.
ETF의 이러한 장점을 연금투자로 연결하면 좋다. 연금 가입자들의 다양한 선호에 맞춰 ETF 포트폴리오를 만들 수 있고 정보기술(IT)이 발달하면서 컴퓨터 알고리즘이 자산배분을 해주는 로보-어드바이저리(robo-advisory)의 활용도 가능하다. 수수료가 싸기 때문에 장기 투자에 좋다. 연금자산처럼 20~30년에 걸친 투자에서는 저렴한 수수료가 핵심적으로 중요한 요소다. 이처럼 앞으로 연금자산에서 ETF의 역할은 얼마든지 커질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을 보면 개인연금이나 퇴직연금 시장에서 ETF가 발을 못 붙이고 있다. ETF가 연금 대상에 포함되느냐는 논란은 기본이고 ETF의 투자와 관련한 시스템 자체가 마련되지 않은 경우도 많다. 게다가 ETF는 판매보수가 없어서 판매자 입장에서 매력도가 떨어지는 상품으로 여겨진다. 이러한 점을 개선해 연금펀드 시장에서 ETF에 자산배분을 할 수 있는 인프라를 갖춰주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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