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5년 9월15일 인천 경찰이 인천 중구 항동에 위치한 선물거래소 주위를 급습, 절치기 도박단을 검거해 벌금형에 처했다는 기사가 신문에 실렸다. 절치기 도박단은 쌀을 사고파는 미두거래로 전 재산을 탕진한 뒤 미두장과 중매소 앞을 배회하며 저희끼리 미두장에서 절(미두 거래가 이뤄지는 시간)이 바뀔 때마다 그 시세를 알아맞히는 내기를 하며 생활하던 사람들로 절치기꾼ㆍ합백ㆍ하바꾼 등으로 불렸다.
절치기 도박단이 활동한 곳은 인천 쌀이 모이는 일종의 선물(先物)거래소인 미두취인소(米豆取引所)다. 이곳은 1896년 일본인 영사가 '미곡의 품질과 가격을 표준화한다'는 미명 아래 이전 재래시장 거래를 금지시키고 조선 전역의 거래를 독점적으로 장악해 미곡의 배급을 통제하고자 만든 민관 합작회사다. 하지만 실제로는 조선의 쌀 착취를 위해 만든 이른바 공인된 '도박장'으로 운영됐다.
당시 미두거래는 오전 10절과 오후 7절로 나눠 하루에 17절 열렸는데 이때 쌀의 가격은 전보를 통한 일본 오사카도지마취인소(大阪堂島取引所) 시세에 의해 결정됐다. 당시 거래는 청산 기간에 따라 당한과 중한ㆍ선한 등 세 가지 형태로 이뤄졌으며 이 가운데 가격변동폭이 가장 큰 3개월물 '선한'에 거래가 집중됐다. 이러한 거래에서 쌀을 사고파는 미두꾼은 중매점에 10% 증거금을 예치하고 최소 거래단위 100석당 7원씩의 수수료를 지불하고 매매했다. 반면 절치기꾼은 밑천도 없이 하루 수차례 불법적인 도박을 자행한 이들로 오늘날의 증시에서 하루 수십 차례 이상 초단타매매를 자행하는 스캘퍼와도 비슷하다.
예나 지금이나 이른바 '대박'을 꿈꾸는 사람들은 투기적인 거래에 몰린다. 과거 절치기꾼 검거령과 작전세력과의 전쟁. 시대가 바뀌어도 건전한 자본시장 발전을 해치는 세력을 근절하려는 당국의 노력은 지속되고 있다. 과거 절치기꾼이 있었다면 지금은 작전세력이 존재하듯 예나 지금이나 일명 '대박'을 노린 투기는 절대 사라지지 않고 있다. 과거 쌀에서 증권으로 대상만 바뀌었을 뿐 부당이득을 노린 사람들의 욕망은 그대로다. 시대가 달라져도 여전히 존재하는 투기꾼들. 박근혜 정부의 주가조작 근절 노력이 결실을 거둘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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