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기업들이 주주총회에서 감사선임과 관련 ‘섀도보팅’을 대거 요청하고 있다. 대주주의 선호도가 반영된 감사가 임명되면 기업감시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23일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12월 결산 상장법인 1,633개사 가운데 35.5%인 591개사가 ‘섀도보팅’을 요청한 것으로 나타났다. 섀도보팅은 회사가 요청하면 한국예탁결제원이 주주들 대신 주주총회에 참석해 의결권을 대리 투표하는 제도이다. 이 경우 예탁결제원은 주총에서 나온 찬성과 반대 비율을 그대로 반영해 투표권을 행사한다.
안건별로 살펴보면 총 1,758건 가운데 27.4%인 482건이 감사(감사위원) 선임의 안이었다. 그 뒤를 이어 임원보수한도(381건), 이사선임(369건), 정관변경(264건) 순으로 요청 비율이 높게 나타났다.
국내 기업들이 감사 선임과 관련 ‘섀도보팅’을 대거 요청한 이유는 현행 법규상 3%를 초과해 지분을 보유한 대주주라 하더라도 감사 선임에 대해서는 3%까지만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회사 지분의 30%를 보유한 최대주주나 3%를 보유한 일반주주나 감사 선임과 관련해선 똑같이 3%의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말이다. 따라서 대주주들이 감사 선임을 본인들의 뜻대로 관철하기 위해 ‘섀도보팅’을 악용하고 있는 상황이다.
‘섀도보팅’이 감사 선임에 대거 이용되면서 기업감시 기능이 원활하게 돌아가지 못하리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감사 선임과 관련 대주주들의 의결권을 3%로 제한했지만 ‘섀도보팅’을 통해 반대의 목소리를 막고 있는 상황이다. 한 스몰캡 담당 애널리스트는 “중소형 기업들은 ‘섀도보팅’으로 의결정족수를 채울 수 있어 전자투표제 도입에 부정적”이라며 “소액주주들이 직접 투표할 수 있는 전자투표제와 달리 ‘섀도보팅’은 대주주가 관철시키는 안건이 그대로 통과되는 단점이 있는 게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정치권은 현재 ‘2015년부터 섀도보팅제 폐지’ 등을 담고 있는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국회에 올려 놓았다. 개정안은 국회 정무위원회는 통과했지만 아직 법제사법위원회와 본회의는 통과하지 못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