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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함께 개봉하는 영화 ‘연애’와 ‘애인’. 지난 몇 주 간 두 영화의 포스터를 관심 있게 눈 여겨 본 관객이라 해도 두 작품의 제목과 주인공, 내용을 조합 시키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어감이 비슷한 이 두 제목은 포스터 속 글씨체와 짙은 살색의 두 여주인공을 전면에 내세운 모습까지 닮아있다. 충무로 역사상 이렇게까지 겉포장이 닮은 영화가 한 날 한 시에 관객들에게 선보이는 사례가 있었을까 싶을 정도다. #1 ‘연애’와 ‘애인’, 이렇게 다르다.
‘당연하게도’ 두 영화의 주인공은 분위기부터 사뭇 다르다. 데뷔 16년동안 조연 자리만 맴돌던, 그러나 ‘번지점프를 하다’ ‘살인의 추억’ 등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였던 ‘연애’의 전미선. 브라운관의 최고 스타 자리를 지켰던, 그러나 불미스런 사건 이후 스크린으로 무대를 옮겨 독특한 연기세계를 펼쳐온 ‘애인’의 성현아. ‘연애’의 풍경은 구질구질한 인생의 절정이다. 여자는 빚쟁이에게 쫓기는 무능력한 남편 대신 가짜 보석 액세서리를 만들며 전화방 아르바이트로 억척스럽게 돈을 번다. 이젠 밤마다 노래방 도우미로 남자들에게 웃음과 몸을 팔아야 한다. 무미건조하고 고단하기만 한 그녀의 인생에도 사랑이 찾아오는 듯 싶지만, 그 사랑조차 치욕적인 배신으로 갈무리된다. ‘애인’은 쿨하다. 전통공예 디자이너라는 멋진 직업을 가진 여자는 능력있는 남자와 결혼을 앞두고 있다. 어느 날, 엘리베이터에서 우연히 한 남자를 만나고 계속되는 우연에 너무도 쉽게 끌린다. 그렇게 단 하루 만난 남자에게 끌리는 그녀, 짧지만 짜릿한 일탈을 시작한다. 그들에게 중요한 건 첫 느낌과 순간적인 감정, 그리고 ‘본능에 충실한’ 두 남녀의 몸이다. 2. #쿨하지만 격정적으로, 그리고 담담하게.
‘연애’를 보는 관객은 내내 불편하고 위태롭다. 그리고 답답하다. 몸을 팔 수밖에 없는 그녀를 둘러싼 현실이 너무도 고되고, 그런 현실에 맞춰가야 하는 그녀의 감정은 그렇게 불안할 수 밖에 없다. 주인집 여자부터 그녀의 ‘친구’임을 자청하는 남자까지 끊임없이 그녀를 내버려 두지 않는다. 물 흐르듯 담담하게 흐르는 영화를 담담하게 볼 수 없는 이유다. ‘애인’은 그에 비하면 때깔도 화려하고 인생들도 멋지다. 내일이면 아프리카로 훌쩍 떠난다는 남자. 그리고 여자. 거칠 게 없다. 서로의 몸을 탐닉하는 공간마저도 멋스럽고 세련됐다. 하루의 짜릿한 일탈이 불안해 보이지만, 보는 관객의 심정은 그저 담담하다. 내일이 있는 그들에게 하루의 일탈 따위는 ‘감정의 장식’이기 때문이다. 후반부, 영화가 애써 비추려 하는 여자의 애틋함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3. #파격적인 노출, 그 뒤에는?
두 영화 모두 관객들의 솔직한 관심도는 ‘얼마나 벗고 나오냐’에 있을지도 모른다. 노출에 포인트가 맞춰지는 작품이 충무로에 나온 게 언제인지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휴대폰 동영상으로 언제든 연예인 누드를 볼 수 있는 2005년에, 중요한 건 노출의 강도가 아니라 그것이 표현하려 하는 메시지다. 비교하자면 ‘연애’보단 ‘애인’이 더 화끈하고 파격적이다. 전미선과 성현아라는 두 여배우의 이름을 놓고만 봐도 관객들의 눈은 성현아의 몸에 더 관심이 간다. 그러나 ‘애인’의 파격적인 정사신 뒤에 있어야 할 두 남녀의 감정을 관객들이 알아채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여자는 유쾌하다가도 토라지며 감정의 기복을 겪지만 이 모든 걸 ‘여자의 일탈 심리’라고 표현하기엔 도식적이다 못해 ‘표현의 과잉’이다. ‘연애’의 충격은 가슴을 무너뜨린다. 감정을 나눴다는 남자에게 받은 상처에 짓밟히고, 또 그 상처를 스스로 어루만지는 주인공의 모습은 공감이 가면서도 보는 이를 착잡하게 만든다. 현실은 영화보다 더 거칠다지만, 그 황폐함을 굳이 극장에서까지 확인해야 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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