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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책은행인 산업은행과 기업은행이 약속이라도 한 듯 예금금리를 파격적으로 제시해 시장의 이목을 끌고 있다. 금융계에서는 금리 정상화 차원에서 바라보는 시각과 시장질서를 왜곡시킨다는 비판이 엇갈린다.
산업은행은 창구에서 판매하는 보통예금(수시입출금식예금)의 금리를 시중은행보다 많게는 25배나 높은 2.5%로 책정해 조만간 상품을 출시한다. 무점포로 판매하는 다이렉트뱅킹(3.5%)보다는 금리가 낮지만 창구에서 판매하는 보통예금의 금리가 2.5%라는 점에서 파격이다.
기업은행은 중소기업 대출의 최고 금리를 10.5%로 낮췄다. 연체대출 최고금리도 12.0%로 묶는다. 은행권의 중소기업 대출의 연체금리가 최고 18%임을 감안할 때 무려 6%포인트 가까이 낮은 셈이다.
두 국책은행의 이러한 금리실험을 두고 시중은행들은 볼멘 표정이다. 개인영업 부문에서 상당수 기업고객을 흡수할 정도로 파괴력이 크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금융감독 당국은 "금리 정상화의 차원으로 볼 수 있다"면서 두 국책은행에 손을 들어주는 형국이어서 시중은행의 수신ㆍ대출 금리책정 전략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금리 정상화인가, 시장질서 왜곡인가=이순우 우리은행장은 지난 3일 "중소기업대출 금리를 내리는 게 반드시 중소기업들에 좋은 것인지 모르겠다. 기업에 맞는 컨설팅이 금리인하보다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업은행의 중소기업대출 금리 인하를 우회적으로 비판한 셈이다.
산업은행의 2.5% 금리의 보통예금 출시에 대해서도 은행권은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현재 시중은행의 보통예금 금리는 0.1~1.0% 수준이다. 시중은행의 한 고위 관계자는 "역마진이 아니면 나올 수 없는 금리를 책정해 시장을 교란하고 있다"면서 "예금금리의 경우 지원도 없이 산은 수준을 따라가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시중은행이 당장 산업은행이나 기업은행과 비슷한 금리를 책정하면 순이자마진(NIM) 훼손으로 이어져 자산건전성에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산업은행과 기업은행은 "금리 조정은 고육책이나 시장 교란 행위가 아니다"고 입을 모은다. 강만수 산은금융지주 회장은 "은행 영업점 한 곳당 운영비용은 20억~30억원 수준인데 산업은행은 점포에 들어가는 비용을 최소화해 금리를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조준희 기업은행장도 "대한민국 중소기업 살리겠다는 데 무슨 시장 교란이냐. 중소기업은 죽겠다고 아우성인데 금융회사들이 자기 이익만 생각하는 것이 올바른 경영이냐"고 반박했다.
◇금융 당국 "금리 정상화의 과정"=금융감독 당국은 보통예금의 경우 시중은행들이 그동안 경쟁 없이 이익만 챙겼다고 평가하고 있다. 금융 당국의 한 관계자는 "기업이나 개인이 보통예금으로 돈을 맡기면 금리가 보통 0% 수준인데 은행으로서는 조달비용을 거의 들이지 않고 쉽게 막대한 자금을 확보해왔다"면서 "보통예금에 대해 별다른 금리경쟁을 하지 않았던 관행에도 문제가 있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 역시 "예금은 은행으로서는 가장 적은 비용으로 자금을 공급받아 왔는데 고객에 대한 혜택을 적었던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예컨대 금융채만 해도 5월의 평균 조달금리가 3.87%인 데 반해 보통예금은 0%대로 조달비용이 극도로 적다는 것이다. 예금은행의 4월 말 보통예금은 61조4,000억원에 이른다.
시중은행들이 주장하는 역마진 가능성도 높지 않다는 해석이다. 금융 당국 관계자는 "금융사 수익성을 나타내는 NIM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산은이 1.46%로 시중은행(2.37%)과 비교해 낮은 수준이지만 시중은행들의 점포임대료 등 관리업무비용을 감안해 계산한 실질NIM은 산은이 1.03%, 시중은행이 1.13%로 거의 비슷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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