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들어 원ㆍ달러 환율은 이상하리만치 '평온'을 유지했다. 호주 달러가 미국 달러화에 비해 2% 이상 절상되고 이웃 뉴질랜드 달러는 3.4%, 싱가포르 달러도 2% 가까이 절상되는 동안 원화 가치는 고작 0.6% 올라가는 데 그쳤다. 그만큼 원ㆍ달러 환율은 하방 압력을 강하게 받고 있었다. 작은 핀셋 하나로 찌르기만 해도 강한 자극을 받을 것 같았다.
예상은 들어맞았다. 미국이 전격적으로 3차 양적완화(QE3) 방침을 밝힌 지난 14일 서울 외환시장은 수직 하락했다. 원ㆍ달러 환율은 하루 새 11원20전이나 급락하면서 1,117원선까지 주저앉았다. 심리적 저지선으로 불리던 1,120원대가 힘없이 무너졌다.
환율의 곡선이 이렇게 급경사를 그리면서 당장 우리 정부 당국이 바빠졌다. 신용등급 상승과 QE3라는 겹호재로 시장은 환호성을 지르고 있지만 밀려오는 외인 자금은 경제 전반에 거품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경고가 잇따르고 있다.
더욱이 원화 가치의 급상승은 가뜩이나 암운이 드리워져 있는 우리 수출 시장에 깊은 주름살을 파이게 만들 수 있다. 글로벌 실물 시장이 여전히 바닥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근근이 수출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는 기업들에 원화가치 상승은 자칫 치명상으로 다가올 수 있다.
◇QE3, 수출에 직격탄 되나=관세청이 16일 밝힌 8월 수출입동향 확정치를 보면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6.2% 감소한 430억달러, 수입은 9.7% 줄어든 410억달러를 기록했다. 수출은 지난 2월 20.5% 늘어난 후 6월(0.9%)에 반짝 증가했을 뿐 ▦3월 -1.5% ▦4월 -5% ▦7월 -8.7% 등 줄곧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유럽 재정위기가 길어지는데다 우리나라의 제1수출시장인 중국의 성장둔화가 현실화하고 있어서다. 이는 이달에도 크게 달라진 게 없다. 지식경제부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에는 추석이 중순에 있어서 올해는 조업일 수가 보다 많을 것 같다"며 "그렇더라도 전년 동월 대비 수출실적은 비슷한 수준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최근 발표한 QE3는 수출시장에 추가로 나쁜 영향을 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당장 유동성 랠리에 따른 여유자금이 한국 등 아시아 시장으로 몰려들 것이라는 전망이 현실화하고 있다. 시장 관계자들은 밀려오는 글로벌 유동성에 환율이 연중 최저점인 3월2일의 1,111원80전은 물론이고 1,100원대로 머지않은 시간 안에 진입할 것이라는 데 이견을 달지 않는다.
강동수 한국개발연구원(KDI) 거시금융정책연구부장은 "QE3로 환율이 하락하면 수출은 줄고 수입은 느는 효과가 예상된다"고 지적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이달 초 올해 수출 전망치를 종전의 4.5%에서 1.7%로 대폭 하향 조정했다. 연구원은 하반기에도 수출전망은 좋지 않다고 봤는데 올 수출이 예상보다 28조7,000억원 줄어들 것으로 봤다. 환율하락에 따른 가격경쟁력 하락은 이 같은 전망치를 더 낮게 만든다.
오석태 SC은행 이코노미스트는 "2차 양적완화 때와 3차가 다른 점을 생각해보면 지금은 중국 경제상황이 좋지 않아 우리나라 수출이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다는 점"이라며 "당국에서도 1,100선에서는 구두개입에 나서지 않겠느냐"고 내다봤다.
물론 중장기적으로는 미국을 중심으로 돈이 풀리면서 세계 경기가 나아져 우리나라 수출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얘기도 있다. 또 원유 등 국재 원자재 가격이 오르면서 우리나라 주력 수출품 중의 하나인 석유화학 제품의 수출단가가 높아질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수출단가가 올라가면 수출량도 증가한다는 의미다.
정부는 경기회복이 환율하락으로 인한 감소효과를 상쇄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지경부 고위관계자는 "돈이 계속 풀리면서 미국 경기가 좋아질 것이라는 기대가 가능하다"며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인한 석유화학 제품 수출단가 인상도 우리에게 긍정적"이라고 했다.
그러나 당분간은 환율하락에 따른 수출감소의 악영향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경기회복에는 시간이 걸리고 미국 시장이 실제로 얼마나 좋아질지 알 수 없어서다.
유병규 현대경제연구원 전무는 "수요 변화는 좀 시간이 걸리고 환율은 당장 변화가 일어난다"며 "실질적으로 보면 환율절상에 따른 가격경쟁력 약화 요인이 발생할 것"이라고 말했다.
◇인플레+자본 과도 유입 거품 우려도=QE3가 단행되자 국제 원자재 시장은 한껏 들썩거렸다. 금을 비롯한 원자재 시장이 수개월래 최고치로 치달았다. 이는 원자재 값 상승으로 잠잠했던 인플레이션을 유발할 수밖에 없다. 우리로서는 억눌렀던 가공 식품 가격이 줄인상되고 있는 시점과 맞물려 다른 나라보다 더욱 강한 인플레이션 압박을 받을 수 있다.
더욱 걱정인 것은 새로운 유동성 거품을 유발할 수 있다는 점이다. 자본의 과도한 유입으로 실물과의 괴리에 따른 유동성 거품을 가져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런 점 때문에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도 14일 중국 방문길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QE3가 단기적으로 시장의 불확실성 완화와 경제심리 회복을 통해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면서도 "유동성 확대에 따른 원자재 가격 상승과 급격한 자본유입에 따른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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