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하나금융은 표면적인 안정감과는 달리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미래저축은행의 유상증자에 하나캐피탈이 참여한 것을 두 차례 검사한 금융당국이 관련 제재를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금융으로서는 김승유 전 하나금융 회장과 당시 하나캐피탈 사장이었던 김종준 하나은행장의 거취가 결정되는 만큼 촉각을 곤두세우는 게 당연했다. 아직 수사에 들어가지 않은 검찰도 당국이 선수(김 전 회장에 대한 징계)쳐주길 바라고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기에 당국의 부담감은 미뤄 짐작할만 했다. 그만큼 금융계 거물이자 산 증인인 김 전 회장의 후광이 만만치 않았다.
설상가상 카드사 정보 유출이란 돌발 변수마저 발생하자 당국의 제재 일정은 기약 없이 밀렸고 하나금융은 찜찜한 긴장감을 더 끌고 갈 수밖에 없었다.
이 때문이었는지 하나금융 내에서는 하나은행이 사업계획을 제출하지 않는 것과 당국 검사를 연계한 구구한 설들이 쏟아졌다. 요지는 "하나금융이 김 전 회장을 위해 김 행장(전 하나캐피탈 사장)을 희생양 삼으려 하자 김 행장이 태업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해석은 억측이 돼 이내 묻혔다. 김 행장이 지난 2월 말 연임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김정태 현 회장의 안정적 2기를 뒷받침하기 위한 용인술이란 분석이 뒤따랐다.
무엇보다 행장 선임에는 당국의 암묵적 동의가 있어야 하는 만큼 하나캐피탈과 관련한 김 행장의 제재 수위도 낮을 것이란 관측이 설득력을 갖게 됐다.
하지만 '김종준 스토리'는 또다시 반전되는 양상이다. 당국이 이달 1일 김 행장에게 문책 경고 이상의 중징계를 통보한 것으로 확인되면서부터다.
오는 17일 당국의 제재심의위원회에서 징계가 최종 확정되면 하나금융 전체 인사 구도에도 소용돌이가 불가피하다.
물론 미 주주총회 안건 분석회사인 ISS에 비공개정보 유출 건과 관련해 어윤대 전 KB금융 회장의 제재 수위가 중징계에서 경징계로 바뀐 전례도 있다. 이번 일이 그저 그런 에피소드에 그칠 공산도 없진 않다는 뜻이다.
하지만 어 전 회장 징계 수위에 대한 누설은 언론 특유의 감이었을 뿐 당국으로부터 공식적인 확인은 일절 없었다.
당국이 심의 전 제재 수위를 확인해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당국 행보의 이면을 놓고 말이 많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9일에는 당국의 국회 정무위 업무보고도 있다. 금융가에는 정치권의 날 선 비판을 좀 누그러뜨려보려는 당국의 정지작업이 아니냐는 정치적 해석도 나돈다. 일각에서는 동양 사태 이후 당국의 보신주의가 더 뚜렷해진 결과로 본다. 향후 제재 수위를 낮추더라도 책임 소홀이란 짐을 덜기 위한 당국의 전략적 의도가 깔렸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김 전 회장이 '주의적 경고' 수준의 경징계를 받는 상황에서 김 행장까지 수위가 낮을 경우 불거질 비판적 여론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당국이 제재 수위를 낮추든 그렇지 않든 금융감독당국 또한 비판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김 행장의 연임에 문제가 있다는 입장이 진심이라면 행장 선임 절차에 착수했던 2월에 확실한 의중을 하나금융에 전달했어야 옳다. 한 달도 채 안된 사이 판단이 바뀌었다면 그게 더 문제다. 누가 봐도 현 상황은 당국이 하나금융의 뒤통수를 친 격에 가깝다.
유상증자 참여로 인한 피해 규모(60억원), 이사회를 소집하지 않고 서면통보로 갈음했다는 사유로 중징계를 매기는 것은 '제재 수위가 인플레이션된 게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이런 견해는 '정작 몸통은 놔두고 깃털만 잡는다'는 우회적 비판으로 들리기도 한다.
대낮에 날벼락을 맞게 된 하나금융으로서는 시나리오별로 대책을 강구해야 할 상황에 봉착했다. 만약 중징계라 해도 문책적 경고 정도로 나오면 김 행장은 내년 3월 주총 이후 3년간 금융권에 재취업을 할 수 없다. 1년간 연임에는 문제가 없다. 물론 김 행장 스스로 거취를 밝힐 가능성도 전혀 배제하긴 어렵다. 징계를 안고 행장직을 수행할 경우 조직에 부담이 큰 탓이다. 더욱이 하나금융으로서는 외환카드 분사, kt ens 협력업체의 사기 대출 사건 등 당국과 부딪칠 의제가 많다. 감독당국에 '전리품'으로 바쳐야 한다는 얘기다. 설령 문책적 경고에서 직무를 계속 수행하더라도 하나금융의 차기 회장 구도는 중대한 변화를 맞는다. 김 행장 입장에서는 은행장을 발판 삼아 회장직에 도전해볼 여지도 있지만 그런 싹이 애초부터 뽑히는 셈이기 때문이다.
징계가 직무 정지나 해임 권고가 나올 경우 공석이 되는 은행장 선임을 놓고 김 현 회장의 고민은 매우 커진다.
사실 김 행장이 처음 발탁된 2012년에는 깜짝 인사라는 평이 지배적이었다. 차세대 경영진으로 부상했던 이현주·김병호 부행장이 '아직은 이르다'는 판단으로 '브리지 인사'가 단행됐다는 분석이 많았다. 달리 보면 김 행장의 관록과 실력이 인정받았다는 뜻이지만 김 행장의 낙점은 하마평과는 거리가 있었다는 게 정설이다.
당시 김 행장과 경합했던 이 부행장은 하나금융 부사장을 거쳐 외환은행의 로스앤젤레스 및 애틀랜타 지점 설립추진단 담당 부행장으로 옮겼다. 또 다른 차세대 후보인 김인환 하나생명 사장은 지난달 보험 쪽에 둥지를 틀어 가능성이 적다.
결국 현 상황에서 김 행장의 거취에 문제가 생길 경우 차기 후보로 가장 유력한 사람은 김 부행장이다. 김 부행장은 2월 김 행장의 연임을 결정할 때도 경발위 최종 후보로 올랐지만 자진 사퇴했다.
불과 10여일 전 19세 연하의 여인과 재혼해 신혼의 단꿈을 꾸고 있는 김 행장. 이런 것을 두고 호사다마라 하는 듯하다. 금융계의 한 고위 인사는 "시기도 그렇고 모양새도 그렇다"며 "당국이 얼마나 숙고해서 판단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금융지주를 이런 식으로 흔들면 당국에도 부메랑이 돼 돌아올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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