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4일로 수교 22주년을 맞는 한국과 중국의 관계는 지난 달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의 방한을 계기로 더욱 가까워졌다. 그동안의 한중 관계가 '정냉경열(政冷經熱)'에서 정치와 경제 모두 뜨거운 '정열경열(政熱經熱)'로 바뀌는 분위기다. 지금까지 양국 관계가 경제적 협력을 중심으로 발전했다면 이제는 정치적으로도 한층 긴밀해졌다는 의미다. 전통적 우방인 미국과 일본과의 관계도 고려해야 하지만 이 같은 한중 밀월 관계 형성은 국내 기업들에는 새로운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연내 체결과 원·위안화 직거래 등이 성사될 경우 한중 간의 경제 협력이 질적 전환을 통해 한층 강화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10년 새 대중국 수출 4배 늘어…내수시장 적극 공략 필요=한중 양국은 이미 경제적 측면에서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중국은 우리나라의 최대 수출대상국이다. 지난 2003년 351억달러이던 대중국 수출액은 지난해 1,458억원으로 4배 이상 늘었다. 반면 대미 수출금액은 같은 기간 342억달러에서 620억달러로 2배 정도 느는데 그쳤다. 우리나라 전체 수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기준으로 26.1%에 달한다. 중국이 연평균 10% 안팎의 성장률을 기록하며 무서운 속도로 경제력을 끌어올리는 과정에서 수혜를 톡톡히 입은 셈이다.
이 같은 대중 수출 증가세에 올 들어 이상 기류가 나타나고 있다. 지난 달 대중국 수출액이 전년 동기 대비 7%나 줄어드는 등 5월부터 석달 연속 감소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1~7월 한국의 대중국 수출액은 814억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2% 감소했다. 이런 추세라면 연간 대중국 수출액도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했던 2009년 이후 5년 만에 감소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대중국 수출 감소는 그동안 고공행진하던 중국 경제성장이 주춤한데다 수출 중심에서 수출과 내수를 동시에 살리는 방향으로 중국의 산업정책 기조가 바뀌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중국의 수출입은 지난해 전년 대비 7%대 성장했으나 올 상반기에는 수출과 수입이 각각 0.9%와 1.5% 증가하는데 그쳤다. 국내 기업들의 대중국 수출이 현지에 진출한 법인에 부품을 수출해 임가공을 거쳐 제3국으로 다시 수출하는 형태의 가공무역 위주여서 중국의 수출이 늘어나지 않으면 타격을 입기 쉬운 구조인데다 중국 기업들의 경쟁력이 높아지면서 철강·석유화학 등의 자급률이 높아진 탓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대중국 수출은 석유화학이나 철강·기계 등 자본재 비중이 상당 부분을 차지했지만 중국이 각종 수입물품을 대체할 기술개발을 서두르면서 국내 기업들의 경쟁력이 나날이 하락하고 있다"며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자본재 투자를 지속하는 동시에 거대한 중국 내수시장 공략을 위한 소비재 및 서비스 수출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소비재·유통기업 현지화로 속속 성과…중화권 제외하면 중국 투자국 1위=중국이 '세계의 공장'에서 13억 인구의 거대한 소비력을 바탕으로 '세계의 시장'으로 발돋움하면서 현지 내수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국내 기업들의 행보도 빨라지고 있다.
올해 말까지 1,000만대의 중국 누적 판매를 앞둔 현대차그룹은 충칭시에 현대차 생산공장 설립을 추진 중이다. 베이징과 쯔양·옌청에 생산 공장을 두고 있는 현대·기아차는 충칭 공장이 들어서면 연 230만대 생산체제를 구축하게 된다. 현대차는 중국 자동차 시장의 주류 소비층으로 떠오르고 있는 '바링허우(80後·1980년 이후 출생자)' 세대를 적극 공략하기 위해 준중형 세단과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생산 비중을 늘린다는 복안이다.
중국 내수 시장 공략에 나선 소비재·유통기업들도 속속 성과를 내고 있다. 롯데그룹은 텐진에 2개 점포를 비롯해 웨이하이·청두·션양에 잇따라 백화점을 개설하며 중국 시장 공략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 중 지난 5월 문을 연 션양점은 향후 롯데백화점의 중국 전략을 가늠하는 이정표로 꼽힌다. 롯데백화점 션양점은 매장 면적이 7만3,000㎡으로 롯데백화점의 중국 점포 중 가장 크다. 롯데백화점은 오는 2018년까지 현재 5개인 중국 매장을 20여개로 늘려 중국을 글로벌 시장 개척을 위한 교두보로 삼을 계획이다. 바이오·식품·서비스·엔터테인먼트·미디어·신유통 등 국내 사업 부문을 중국에 성공적으로 안착시키면서 현지 매출액 3조원 돌파가 초읽기에 들어간 CJ그룹은 오는 2020년까지 전체 매출액 가운데 해외 비중을 70%까지 끌어올린다는 '그레이트CJ'를 달성하는 교두보로 중국을 적극 활용한다는 전략이다.
입맛이 까다롭기로 소문난 중국시장에서 차별화한 맛을 바탕으로 베이커리전문점 '파리바게뜨'를 성공적으로 안착시킨 SPC는 현지 진출 10년만에 매장 수를 125개까지 늘렸다. 현지인들에게 한 발 더 다가서기 위해 고객들이 직접 참여하는 케익 교실 행사만 500회 이상 진행하는 등 철저한 현지화가 주효했다는 평가다. 한중 수교 이듬해인 1993년 중국 시장에 진출한 아모레퍼시픽은 매년 30%대의 성장률을 기록하며 가파른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오는 10월에 상하이신생산연구기지가 본격 가동되면 아모레퍼시픽의 중국 연간 생산량은 기존보다 16배 늘어난 연간 7,500톤물량에 1억개를 넘어설 전망이다.
반도체·디스플레이·석유화학 등 부품·소재 분야에서도 국내 기업들의 대중국 투자도 이어지고 있다. 삼성은 지난 5월 산시성 시안에 메모리반도체 공장을 완공해 가동에 들어갔다. 시안 공장에는 앞으로 총 70억달러가 투입될 예정이다. SK그룹도 중국 시노펙과 함께 3조3,000억원을 투자해 후베이성 우한시에 나프타 분해설비(NCC) 및 하위공정 공장을 완공, 상업 생산 중이며 LG그룹은 내달 1일 광저우에 디스플레이 패널 공장을 준공한다. GS그룹도 GS칼텍스를 통해 랑팡·쑤저우 등지에 연산 8만5,000톤 규모의 복합수지 공장 건설을 추진 중이다.
이처럼 국내 기업들의 중국 투자가 늘면서 우리나라는 올 상반기 일본을 제치고 중국 투자국 4위로 올라섰다. 무역협회에 따르면 올 상반기 우리나라의 대중국 투자는 28억달러로 일본(24억달러)을 제쳤다. 홍콩(438억5,000만달러), 대만(31억2,000만달러), 싱가포르(30억9,000만달러) 등 중화권을 제외하면 우리나라가 중국의 1위 투자국인 셈이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