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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고효자 서포 김만중
입력2003-09-19 00:00:00
수정
2003.09.19 00:00:00
서포 김만중(1637~1692)은 조선 숙종 때의 대문장가요 정치가였다. 그가 남긴 한글소설 `구운몽`과 `사씨남정기`는 국문학사에 길이 빛나는 걸작이다. 서포는 정치가로서는 당쟁에 휩쓸려 부침을 거듭했고, 강직한 성품이 여러 차례 왕의 비위를 거슬려 끝내 유배지에서 한많은 일생을 마칠 수밖에 없었지만, 그의 문학작품은 위대한 유산으로 우리 곁에 늘 살아 있다. 서포는 문인이요 정치가이기에 앞서서 만고에 드문 효자요 고매한 성품의 인격자였다. 그는 병자호란 때 피란중인 바다 위에서 유복자로 태어나 형 만기와 더불어 홀어머니 해평 윤씨의 엄격한 훈도를 받으며 자라났기에 남달리 효성이 지극했다.
그가 3년간 귀양살이하며 극진한 사모의 정으로 시를 읊고, 덧없는 인생을 관조하다가 파란만장하고 중첩했던 한삶을 마친 마지막 유배지 경남 남해군 이동면 양아리 노도 배터에는 그의 위대한 문학정신과 지극한 효성을 기리는 유허비가 세워져 있다. 서포는 마지막 귀양길을 떠나면서 이렇게 눈물겹게 읊었다.
`해마다 어머님 생신날이면 / 형제 마주서서 색동옷 입고 춤추었건만 / 이제 아우 하나 명받고 곁을 떠나니/ 아아, 어머님 가슴이 얼마나 아프실까!-`
그런데 서포는 그해 연말 어머님이 세상을 떠나셨다는 부음을 뒤늦게 전해 들었다. 서포는 땅을 치고 몸부림치며 피눈물을 쏟았다. 무죄의 죄인이 되어 머나먼 남쪽 바다 한가운데 갇힌 몸으로 임종도 못한 불효자가 되었으니 당시 그의 참담한 심정을 그 누가 알아주랴.
`오늘 아침 사친시를 쓰고자 하여 / 몇 번이나 붓을 적시다가 다시 내던졌던가 / 눈물이 이미 적시니 글씨가 이루어지지 않아 / 쓰고자 하는 마음뿐, 사친시는 끝내 짓지 못했네!`
예나 이제나 세상에 나와서 높은 벼슬을 하고 많은 돈을 벌었노라고 행세하는 사람은 많고도 많건만, 집안에서 부모님께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 있고 부부간에 화목한 사람은 찾아보기 힘드니 참으로 안타까운 노릇이다. 이는 존경할만한 사회적 지도자도 스승도 없는 탓이다. 또한 말세로 가듯 잘못된 세월의 흐름에 따라 인정이 메마르고 세태가 각박해진 탓이다.
<황원갑(소설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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