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아이폰이 등장하기 전까지 삼성전자ㆍLG전자 등 국내 휴대폰 제조사들은 승승장구를 거듭했다. 세련된 디자인에 우수한 품질을 갖춘 휴대폰을 재빨리 선보이면서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세계 휴대폰 시장에서 각각 2위와 3위를 기록하며 휴대폰 시장의 강자로 자리매김해왔다. 전문가들은 세계 1위 노키아를 추월하는 것은 시간 문제라는 장밋빛 전망을 앞다퉈 내놨다. 국내 휴대폰 시장 역시 '외산 휴대폰의 무덤'으로 불릴 정도로 오랜 기간 국산 휴대폰의 독무대였다. 삼성전자와 LG전자ㆍ팬택 국내 휴대폰 3사는 시장점유율 90% 이상을 차지하며 국내 휴대폰 시장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안방에서의 막강한 점유율이 세계 휴대폰 시장 2·3위 업체로 도약하는 발판이 됐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국내에 아이폰이 출시되면서 국내 휴대폰 제조사들은 충격 그 자체에 빠졌다. 도입 초기 반짝 인기를 끌다가 수그러들 것이라던 아이폰이 연일 돌풍을 이어가자 국내 휴대폰 산업의 미래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일각에서는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자랑하던 국산 휴대폰의 경쟁력이 총체적인 위기에 빠졌다는 전망까지 제기됐다. 국내 휴대폰 업체들의 영업이익률은 간신히 10% 내외를 기록한 반면 아이폰을 앞세운 애플의 영업이익률은 40%에 달했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부랴부랴 옴니아2와 안드로원을 내놓으며 아이폰 견제에 나섰지만 아이폰 열풍을 잠재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급기야 내부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당시 최지성 삼성전자 사장은 "국내 시장 1위인 삼성전자를 반성하게 했다"고 말했고 남용 LG전자 부회장은 "애플과 같은 제품을 만드는 것이 목표"라며 위기 의식을 드러냈다. 하지만 아이폰이 불러온 '스마트폰 열풍'은 오히려 국내 휴대폰 산업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촉매제가 됐다. 스마트폰 시장에 대한 대응이 늦었다는 위기론 속에 급격히 스마트폰 체제로 전략을 수정하면서 발 빠른 대응에 성공한 것이다. 삼성전자가 아이폰 대항마로 야심차게 선보인 갤럭시S는 지난 6월 해외시장에 출시된 이래 글로벌 판매량 900만대를 넘어섰다. 이 같은 추세라면 올해 말 삼성전자 휴대폰 사상 최단기간인 6개월 만에 1,000만대 판매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갤럭시S는 최근 북미 안드로이드폰 시장에서 맹주 모토로라를 제치고 1위에 올라선 데 이어 컨슈머리포트가 주관한 '올해 최고의 스마트폰'에 선정되며 명실상부한 안드로이드폰의 대표주자로 자리잡았다. 시장조사업체 가트너에 따르면 올 초 4.8%에 불과했던 스마트폰 시장점유율도 3·4분기 10%까지 끌어올리며 사상 처음 세계 4위 스마트폰 업체로 올라섰다. LG전자도 그동안의 부진을 씻고 점차 점유율을 회복하고 있어 국산 스마트폰 경쟁력에 청신호가 켜졌다는 분석이다. 지난 10월 글로벌 시장에 선보인 보급형 스마트폰 옵티머스원은 출시 40여일 만에 100만대를 돌파한 데 이어 최근 판매량 200만대를 넘어섰다. 내년 초에는 세계 최초로 듀얼코어 프로세서를 탑재한 프리미엄 안드로이드폰 옵티머스2X를 선보일 계획이다. 팬택도 스마트폰의 선전에 힘입어 14분기 연속 흑자행진은 물론 내년 말로 예정된 기업개선작업 종료가 확실시되고 있다. 최근에는 미국 버라이즌과 일본 KDDI에 잇따라 진출하는 등 해외시장 공략에도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전문가들은 해외 휴대폰 시장이 2년에 걸쳐 겪었던 스마트폰 열풍을 6개월 만에 압축적으로 경험한 것이 휴대폰 산업의 경쟁력을 키운 원동력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김운호 한화증권 연구원은 "아이폰 출시 이후 가장 큰 변화는 세계 모바일 시장의 중심이 통신사업자에서 제조사로 이동했다는 것"이라며 "국내 업체들이 발 빠른 대응에 나서면서 향후 국산 스마트폰의 경쟁력 역시 한층 강화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국산 스마트폰이 선전을 거듭하면서 1위 노키아와의 경쟁 구도에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스트래티직애널리틱스(SA)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올 3·4분기 사상 처음으로 분기 판매량 7,000만대를 웃도는 7,140만대를 기록하며 전년 동기 대비 1%포인트 늘어난 21.8%의 시장점유율을 달성했다. 여기에다 영업이익률도 10%대를 다시 회복하는 등 양과 질 모두에서 고른 상승세를 나타내고 있다. 판매량 1억1,040만대에 점유율 33.8%를 기록한 노키아와의 격차 역시 판매량 3,900만대, 점유율 12%로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 영업이익률에서는 삼성전자(10.16%)가 노키아(5.15%)의 두 배에 달한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내년을 기점으로 삼성전자와 노키아의 격차가 더욱 줄어드는 한편 LG전자를 합한 국내 휴대폰 업체의 점유율이 사상 처음으로 노키아를 앞지를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최지성 삼성전자 부회장이 2007년 정보통신총괄 사장 취임사에서 밝힌 "수년 내에 노키아를 따라잡겠다"는 계획이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삼성전자는 반도체와 메모리ㆍ프로세서ㆍ디스플레이 등 핵심 부품을 수직계열화함으로써 어느 업체보다도 경쟁력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중태 IT문화원 원장은 "아이폰이 출시되기 전만 해도 국내 휴대폰 제조사들은 저렴한 가격에 우수한 성능을 제공하는 일반 휴대폰만으로도 충분히 수익을 낼 수 있었기 때문에 외부 변화에 둔감할 수밖에 없었다"며 "아이폰 열풍은 국내 휴대폰 산업의 위기로 작용하는 동시에 산업 전체의 경쟁력을 키우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