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금융 이사회가 20일 예정됐던 우리투자증권을 포함한 4개 패키지 매물에 대한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을 다음주로 미뤘다.
이사회가 헐값 매각 시비에 따른 배임 가능성을 우려했기 때문으로 보이는데 극도의 보신주의에 책임 회피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사회가 이번 매각작업의 제1원칙이었던 ‘패키지 매각’까지 해체하겠다고 나설 경우 원칙을 정면으로 뒤집었다는 비난은 물론 불공정 시비에 따른 소송 등 상당한 후폭풍이 불 것으로 예상된다. 지방은행 등 우리금융 민영화 작업 전반에도 부작용이 불가피해보인다.
우리금융지주는 20일 이사회를 갖고 우투증권을 비롯해 우리자산운용, 우리아비바생명, 우리금융저축은행 등 4개 패키지 매물에 대한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안건을 심의했지만 결론을 못 냈다.
이순우 회장과 사외이사 7명으로 구성된 이사회는 다음 주에 재소집된다.
이사회는 보도자료를 통해 “충분한 논의를 위해 이사회를 연기하고 추후 개최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벌써부터 이사회의 사외이사들이 일각에서 제기된 배임 논란에 책임을 회피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원칙대로 패키지 매각을 적용하면 1조1,000억원대를 써낸 NH농협금융의 인수가 확정적이었다. KB금융은 1조원 언저리에 불과한 금액을 썼고 파인스트리트는 자금력이 미비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투증권만 놓고 보면 KB금융이 1조1,500억원으로 가장 높은 가격을 썼다. 하지만 이는 패키지 매각론과 배치돼 공정한 게임이 될 수 없다.
금융계에서는 우리금융 이사회가 기존 패키지 매각에 입각해 입찰가를 제시한 농협의 손을 들어주길 미룸으로써 사실상 민영화 작업의 기본전제를 스스로 훼손한 격이 됐다고 보고 있다.
이 때문에 이번 결정의 여파는 간단치가 않다. 자칫 우리금융 민영화의 큰 그림 자체가 완전히 어그러지는 사태로 비화될 소지가 다분하다.
물론 이사회의 이번 결정은 헐값 매각 논란이 빚어지고 있는 만큼 이사회가 더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더 꼼꼼히 살펴보겠다는 의도로 해석할 여지가 없지는 않다.
농협도 일단 이사회의 결정을 기다리겠다는 논평을 내놓았지만, 속내는 불편함이 묻어난다.
만약 분리매각이 허용될 경우는 농협발 소송전으로 비화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금융계 고위관계자는 “원칙도 버리고 실리도 버린 결정”이라며 “사외이사들의 책임 회피”라고 비판했다.
특히 분리매각 결정 시에는 우리금융저축은행과 우리아비바생명은 매각되지 않을 것이 확실시된다. 결국 두 계열사는 내년에 매각되는 우리은행에 혹처럼 붙게 된다. 몸이 무거워 단독매각 여부도 불투명한 우리은행 입장에서는 민영화가 물 건너간다고 볼 수 있다.
본입찰이 코 앞인 23일 이뤄지는 경남, 광주 등 지방은행 인수전에도 악영향이 점쳐진다. 가뜩이나 경제논리가 정치 바람에 휘둘리는 판에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결과에 막무가내로 몽니를 부리는 후보가 나올 여지가 농후하기 때문이다. 이번 사례가 선례가 돼 다짜고짜 반발부터 할 수 있다는 얘기다. 패키지 매각이라는 원칙을 지키는 것이 실리도 챙기는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 이유도 이 때문이다.
투자금융(IB) 업계 관계자는 “우리아비바생명과 우리저축은행을 우리금융이 생각하는 적정 가격에 매각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그만큼 추가적인 투자와 비용부담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며 “우리투자증권만 매각하는 것이 돈을 더 받을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주장은 현재의 현금유입만 고려한 단순 발상”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다만 오늘 결정이 분리매각을 인정한다는 의미는 아닌 만큼 좀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우리금융의 이사회 멤버들이 일각에서 제기한 배임 혐의에 지나치게 몸을 사리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한 금융계 고위인사는 “우리금융 이사회가 처음부터 원칙대로 밀고 나갔다면 이런 논란이 빚어지지도 않았을 것”이라며 “무조건 뒷다리부터 잡고 보는 정치권과 일부 언론의 잘못된 논리에 휘둘린 측면이 크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제 막 본게임에 들어가게 되는 우리금융 민영화 작업이 밑그림부터 훼손될 경우 결과적으로 이번 결정이 나중에 이사회의 책임으로 돌아올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였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