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오사카에 본사를 둔 샤프가 중대 결정을 내렸다. 오는 2010년 3월 가동을 목표로 오사카에 액정판넬공장을 비롯해 태양전지 공장을 만들기로 한 것. 투자 금액이 무려 1조엔에 달하는 막대한 규모다. 샤프가 이런 용단을 내릴 결정적인 계기는 지난 2002년 수도권 등 기존 도심권역에 공장을 지을 수 없도록 한 공장제한법이 폐지됐기 때문이다. 해외에 공장을 설립할 경우 기술 유출에 대한 노파심이 컸던 샤프로서는 더 이상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더구나 본사와 가동공장이 공장 설립 예정지에서 2시간 내 거리에 위치해 있어 기술 지원 등 시너지 효과도 기대해 볼 수 있었다. 일본 재계단체인 경단련 관계자는 “소니를 비롯해 캐논ㆍ켄우드ㆍ마쓰시타 등 일본으로 유턴하는 글로벌 업체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며 “정부가 규제를 풀면서 굳이 생산관리가 어렵고 기술 유출의 리스크도 따르는 동남아나 중국에 투자할 이유가 줄어드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공장제한법 폐지는 규제 완화의 파급력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로 꼽힌다. 일본이 80년대 부동산 버블 붕괴로 촉발된 최악의 장기 불황을 딛고 최근 화려하게 부활한 데는 ‘규제 개혁을 통한 투자 활성화’라는 해법이 있었다. ◇‘기업 기(氣) 살리기’ 요체는 규제 완화= 지난 2001년 집권한 고이즈미 준이치로 정권은 규제 개혁의 선봉장 역할을 했다. 이는 규제 철폐를 통해 경기를 회복시켜야 한다는 절박한 현실 인식에 따른 것. 일본 정부는 2001년 이후 대기업·노동·창업 등 분야에서만 총 1500여건의 규제를 풀었다. 특히 기업들의 투자 유치를 유인할 수 있는 조치를 잇따라 취했다. 공장 제한법에 이어 지난해에는 공장재배치촉진법(공장을 지방으로 이전할 경우 이전 비용 등을 보조하는 내용의 법률)을 없앴다. 우리나라로 치면 수도권 공장총량제에 비견할 만한 규제를 손본 셈이다. 또 공정거래위원회가 출자총액규제의 모델로 삼았던 ‘대규모 회사의 주식보유총액제한제도’도 지난 2002년 철폐했다. 창업 의욕을 높이기 위해 각종 장벽도 허물어 지난해 새로운 회사법을 만들어 단돈 1엔만 있으면 누구나 회사를 만들 수 있도록 하는 등 최저 자본금 제도를 폐지했다. 내각부 규제개혁추진실 관계자는 “지난 2000년 초반부터 일본 정부는 꾸준히 기업의 투자를 확대시키기 위한 정책을 밀어붙였다”며 “이를 위해 규제에 녹아 든 비 시장적 요소를 없애는 한편 사전 규제형 행정에서 사후 점검형 행정으로 전환했다”고 설명했다. ◇규제 개혁은 작은 정부와 연결=규제 폐지는 달리 보면 중앙정부의 간섭이 줄어든다는 의미다. 이는 과거 정권의 공공지출 확대가 기업의 ‘관(官) 의존’ 체질만 심화시켜 경기를 살리기는커녕 재정적자만 늘렸다는 반성에서 비롯됐다. 공공개혁의 대표적 사례로는 지난해 각의를 통과한 행정개혁 관련 법안을 꼽을 수 있다. 골자는 공무원 인건비와 정원을 향후 5년간 5% 줄이고, 국책은행 성격의 정책금융기관 8곳을 2008년까지 1곳으로 통합한다는 것. 아울러 정부 보유 자산을 과감히 팔아치워 국가 부채를 줄이도록 했다. 집권 기간동안 6만 명 가까이 공무원 수가 늘어난 참여정부와 비교하면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은 대목이다. 특히 올 4월 아베 신조 전 총리는 관료들의 반발을 무릅쓰고 공무원이 민간 기업 등에 낙하산 인사로 내려가는 것을 막는 ‘공무원 제도개혁법안’을 통과시켰다. 공무원이 민간 기업으로 가게 되면 쓸데없는 규제로 경영에 간섭할 개연성이 커진다는 판단 때문이다. 개혁을 추진하기 위해 제 군살부터 제거하려는 정권의 노력이 일본 경제 회생의 숨은 원동력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규제완화로 15년간 146조원 경제효과=규제개혁에 따른 경제적 효과는 어느 정도일까. 내각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 1991년부터 2005년까지 15년간 전력ㆍ도시가스 등 14개 부문에 걸친 규제 완화로 약 18조3,000억엔(146조원)의 경제 효과를 달성했다. 국민 1인당 14만3,000엔의 편익이 돌아간 셈. 일례로 이동통신 요금의 경우 지난 1993년부터 2005년까지 규제개혁을 실시한 결과 60%가량 빠졌고, 수요는 1,900%가량 늘었다. 일본내 신규 공장을 설립한 건수는 2002년 844건에서 지난해 1,782건으로 증가한 데 비해 해외로 나가 공장을 만든 건수는 같은 기간 434건에서 182건으로 줄었다. 일본 내 착공 공장 면적은 지난 2002년 850만㎡에서 지난해에는 1,570만㎡로 두 배 가까이 늘었으며, 특히 지난 2004년부터 3년간 신규 투자 비용 7,800억엔 가운데 80%가 일본 국내에 투자됐다. 경단련 관계자는 “소득 대비 낮은 임금 수준과 기술 유출 우려 등도 일본 기업이 국내 투자로 돌아서게 한 요인이지만, 가장 큰 원인은 과감한 규제개혁의 단행”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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