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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비업체 ‘한계상황’

국내 통신시장의 미래가 불투명해지면서 가장 타격을 받는 부문은 유ㆍ무선통신 장비업체들이다. 정부의 정책혼선으로 차세대 서비스 일정이 연기되거나 규모가 축소되면서 그 피해를 몽땅 장비업체들이 입고 있는 것이다. 상당수 업체들이 정부의 정책만 믿고 새로운 기술개발에 엄청난 투자를 했다가 돈만 묶인 채 투자비를 회수하지 못해서 도산일보 직전에 이르고 있다. 특히 시스템장비, 중계기 등 이동통신 장비업체들이 3세대 서비스인 `WCDMA`에 대한 투자가 늦어지면서 한계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중견 이동통신 중계기업체인 기산텔레콤은 최근 3년동안 직원들 월급을 한 푼도 올려주지 못했다. 매출액이 지난 2000년 455억원에서 지난해 349억원으로, 올해에는 더욱 쪼그라들었고 순이익도 적자로 돌아섰기 때문이다. 기산텔레콤은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 흥창ㆍ이트로닉스ㆍ휴니드테크놀러지 등 부도업체가 속출했고 살아남았더라도 매출이 반토막 난 기업이 수두룩하다. 지난 2000년만해도 50여 개에 달하던 중계기 업체가 이제 절반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자금 조달을 위해 코스닥 등록을 추진해온 중계기 업체 중앙시스템은`업황 전망이 불투명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2년째 심사에서 고배를 마셨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살아남기 위해 중국시장에 진출하거나 업종 전환을 서두르는 업체도 적지않지만 이마저 여의치 않은 실정이다. 중국 진출 기업은 기술력이 높지 않아 중국 경쟁사의 추격으로 가격 경쟁에서 힘없이 밀려나고 있다. 영우통신은 휴대폰 키패드사업을, 파인디지탈은 텔레매틱스 기기 생산에 나섰고 단암전자통신은 PDP TV에 들어가는 전원공급장치 제조에 나섰다. 이동통신 시스템을 구축하는 대형 통신장비 업체도 예외가 아니다. 삼성전자, LG전자의 통신시스템 사업부와 현대시스콤은 내수 투자가 지연되면서 중국, 인도, 스페인 등 해외 진출을 적극 시도하고 있다. 하지만 잘 나가는 휴대폰이나 반도체 부문과 달리 적자를 면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삼성전자의 통신장비 부문 한 관계자는 “올 연말 휴대폰이나 반도체 사업부 직원들은 두둑한 성과급을 챙겨가고 있지만 우리는 그저 부러울 따름”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유선 장비업계도 사정은 마찬가지. 한 때 인터넷 대중화를 타고 번창했던 중소형 광전송 장비업체들은 요즘 투자 수요가 아예 실종되는 바람에 한숨을 쉬고 있다. 삼우통신, 이스텔시스템즈, 옐링크, 네오웨이브 등 광전송장비 매출이 3분의1로 줄어드는 등 실적이 엉망이 된 상태다. LG증권에 따르면 2000년도에 7,859억원에 달했던 광전송장비 시장이 올해에는 4,000억원 수준으로 추락했다. 그나마 가끔씩 발주가 들어오는 광전송 장비도 알카텔, 루슨트 등 외국사에 고스란히 빼앗기고 있다. 스위치, 라우터 등 다른 유선 장비업체는 외국회사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통신 장비 업체의 위기는 바로 우리 통신시장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서비스에 대한 투자 지연은 곧바로 통신장비 시장의 위축을 불러 일으키고 통신장비시장이 위축되면서 수출 경쟁력이 움츠려 드는 악순환이 되풀이 될까 우려되고 있다. 일본이 DMB를 도입할 경우 중계기는 그나마 기술 수준이 높은 한국에서 조달할 것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차세대 서비스의 도입을 늦추면서 장비 경쟁력, 수출 경쟁력까지 상실하는 우를 범할경우 우리나라 IT산업의 미래는 어두워질 수 밖에 없다. <고광본기자 kbgo@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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